한남오거리 5월 셋째 수요일 오전 11시 28분 — 봄 끝자락 남자 옷차림 일곱과 단추 한 칸의 차이
5월 셋째 주 수요일 오전, 한남오거리에서 한강진역 방향으로 11분쯤 걸었다. 봄과 여름이 한 옷장에 섞이는 일주일이라 그런지, 같은 길에서 본 일곱 명의 옷차림은 묘하게 어긋나거나, 단추 한 칸 차이로 살아났다. 직접 본 차림만 시간순으로 적는다.
한남오거리 횡단보도, 11시 31분
북단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남자 두 명. 한 명은 옅은 베이지 카디건 위에 흰 셔츠를 받쳐 입었고, 다른 한 명은 무릎 위로 정확히 5cm 올라간 데님 쇼츠에 흰 스니커즈였다. 오전 9시 기온이 섭씨 19도였는데, 점심에는 24도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카디건은 한 시간 뒤면 짐이 될 차림이고, 쇼츠는 한 시간 뒤에야 어울릴 차림이었다. 같은 횡단보도, 같은 신호를 받고도 두 사람은 다른 계절을 입고 있었다.
한강진역 1번 출구 앞, 11시 36분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출구 옆 가로수에 기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어깨 폭이 한 치도 남거나 모자라지 않게 떨어지는 검정 단추 셔츠. 단추는 위에서 세 칸을 풀었고, 안에 검은 무지 티를 받쳤다. 핵심은 셔츠의 깃 폭이었다. 보통 양산되는 셔츠 깃보다 1.5cm쯤 좁다. 첫 단추 위치도 평균보다 약 2cm 아래였다. 이런 차이가 합쳐지면 셔츠가 자켓처럼 떨어진다. 신고 있던 검은 가죽 더비는 굽이 낮고 발등이 좁은 모델로, 셔츠와 같은 결의 절제가 발 끝까지 이어졌다.
한남대로 카페 테라스, 11시 42분
4인 테이블 중 창가에 앉은 남자. 위는 옅은 카키 셔츠, 아래는 셔츠보다 한 톤 어두운 카키 슬랙스. 톤 온 톤이지만 단조롭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셔츠 소매를 정확히 두 번 접어 팔뚝의 짙은 피부톤이 중간 색으로 작용했다. 둘째, 벨트와 시계 줄을 모두 다크 브라운으로 통일했다. 같은 색을 다른 톤으로 쌓을 때 어디 한 곳을 어둠으로 묶어주면 옷차림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오늘 본 일곱 명 중 가장 5월 말의 공기에 맞는 옷이었다.
이태원로 굴다리 직전, 11시 47분
가죽 자켓을 한쪽 어깨에 걸친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5월 말 평일 점심에 가죽이라니 의외였지만, 사이즈는 정확했다. 문제는 안에 받쳐 입은 네이비 후디였다. 후디의 어깨 폭이 자켓보다 넓어서 자켓을 걸친 순간 어깨선이 두 겹으로 무너졌다. 가죽 자켓의 매력은 어깨에서 시작되는데, 그 출발점을 안쪽 옷이 가린 셈이다. 후디 대신 얇은 라운드 티 한 장이었으면 다른 옷차림으로 기억됐을 것이다.
이태원로54길 골목, 11시 53분
좁은 골목에서 마주 걸어 나오던 20대 초반 두 명. 한 명은 와이드 카고 팬츠에 흰 탱크탑, 다른 한 명은 무광 베이지 셋업이었다. 두 사람의 키 차는 어림잡아 12cm쯤이었는데, 키가 작은 쪽이 3cm가량 굽이 있는 가죽 부츠를 신어 시각적 차이를 좁혔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걸음의 폭이 거의 같았다는 점이다. 옷이 다르고 키가 달라도 함께 걷는 시간이 길어지면 보폭이 비슷해진다. 두 사람의 옷차림은 그 동행의 길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결론 메모
오늘 일곱 명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 한강진역의 남자와 카페 테라스의 남자, 둘이었다. 공통점은 단추 위치, 깃 폭, 벨트 톤, 신발 굽 같은 1~3cm 단위의 결정들을 한 방향으로 묶었다는 것이다. 옷이 두꺼워서 잘 입어 보이는 계절은 끝났다. 5월 말의 옷은 두께가 아니라 정돈으로 승부하는 옷이라는, 평범하지만 잊기 쉬운 결론을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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