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첫 일요일 오전 11시 30분, 정동길에서 정동제일교회와 중명전 사이 — 1897년 벽돌과 1901년 마당을 50분

5월 3일 일요일 오전 11시 30분쯤, 나는 시청역 1번 출구를 나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길로 들어섰다. 1897년에 봉헌된 정동제일교회의 외벽 줄눈, 그리고 1901년에 지어진 중명전의 마당까지, 50분쯤을 천천히 걸으며 손끝으로 건물의 표면을 만진 기록이다. 매번 와도 보이는 디테일이 달라지는 동네라, 오늘도 결국 메모장이 길어졌다.

1. 정동길 입구에서, 5월 햇살의 각도부터

오전 11시 32분, 시청역 1번 출구를 나오자 햇살은 거의 정수리에 가깝게 떨어지고 있었다. 5월 첫 일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정동길 초입의 인파는 적었고, 덕수궁 돌담길 양쪽으로 늘어선 양버즘나무 그늘이 보도 위에 짧게 누워 있었다. 나는 검정 면 셔츠에 회색 슬랙스 차림이었는데, 정동길의 톤과 의외로 잘 어울렸다. 첫 5분은 그냥 햇빛의 각도와 그늘의 모양만 봤다. 11시 38분쯤 정동제일교회의 붉은 벽돌이 시야 왼쪽으로 들어왔다.

2. 정동제일교회 1897년 외벽, 줄눈을 손끝으로

정동제일교회 본당은 1897년 12월에 봉헌된, 한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개신교 예배당 가운데 하나다. 외벽의 붉은 벽돌은 한 장 길이가 약 21센티미터, 두께가 5.5센티미터쯤 되어 보였다. 줄눈의 회반죽은 노랗게 변색되어 있었고, 손끝으로 만져보니 표면이 까슬했다. 백 년이 넘는 벽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줄눈 사이사이에 작은 이끼가 끼어 있는 건 오늘 처음 봤다. 정면 박공 끝, 십자가 아래 작은 환기창의 그림자가 햇빛을 받아 길게 떨어지는 게 11시 51분의 풍경이었다.

3. 구 신아일보 사옥 옆 골목, 시멘트의 옛 면

교회를 지나 100미터쯤 더 걸으면 정동길과 새문안로 5길이 만나는 모서리에 구 신아일보 사옥이 있다. 1969년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이 건물은 외벽이 거친 시멘트 마감인데, 옆으로 빠지는 좁은 사잇골목으로 들어가면 1970년대 사무동들의 옆구리 시멘트 면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한쪽 벽은 회색 페인트가 갈라지면서 그 아래 본래의 옅은 베이지에 가까운 시멘트 면이 드러나 있었다. 폭은 어른 어깨 너비, 길이는 12미터쯤 되는 골목이다. 12시 4분, 골목 끝에서 뒤를 돌아보니 정동길 가로수 그늘이 골목 입구를 정확히 반으로 가르고 있었다.

4. 중명전 마당, 다섯 번째 와도 매번 다른 그림자

중명전은 1901년경에 지어진 황실 도서관이자,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된 자리다. 나는 이 마당을 다섯 번 와봤는데 매번 그림자의 위치가 다르다. 12시 17분의 그림자는 마당 한복판 잔디 위로 거의 북쪽으로 짧게 누워 있었고, 길이는 건물 높이의 0.7배쯤이었다. 5월의 정오는 그림자가 가장 짧은 시간대다. 외벽 벽돌은 정동제일교회보다 살짝 더 어두운 적갈색이고, 창틀의 흰색 페인트는 두껍게 발려 있어 햇빛을 받으면 거의 크림색으로 보인다. 나는 항상 마당 남동쪽 모서리에서 비스듬히 본다. 그 각도여야 측면 박공의 디테일이 같이 들어온다.

5. 정동길 끝, 12시 22분의 메모 세 줄

중명전을 빠져나와 정동길을 끝까지 걸었다. 정동삼거리 모퉁이 카페 앞 벤치에서 12시 22분에 멈췄다. 50분 가까이 걸은 셈이다. 휴대폰 메모장에 세 줄을 적었다. 첫째, 정동제일교회 줄눈에 낀 이끼는 비 온 다음에 다시 보러 와야 한다. 둘째, 구 신아일보 옆 골목의 시멘트 면은 페인트가 더 벗겨지면 그 자체로 시간의 표면이 된다. 셋째, 중명전 마당 그림자는 정오보다 오후 4시에 길이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난다. 사라지지 않을 것들에 대해 적는 일이 지겹지 않은 건, 매번 같은 자리에서 다른 디테일이 보이기 때문이다.

정동길은 표면이 천천히 바뀌는 동네라 자주 와야 한다. 다음에는 비 온 다음 날 오후 3시쯤, 줄눈에 낀 이끼와 시멘트 면의 색 변화를 다시 볼 생각이다. 손끝의 기억이 카메라보다 먼저 가는 동네는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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