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둘째 수요일 오전 11시 4분, 봉천13구역 은천로17길 — 쇠창살 두른 빈집 아홉과 마지막 세탁소 셋

2026년 5월 둘째 주 수요일 오전, 관악구 봉천동 13구역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이주 공고가 붙은 골목에서 빈집과 남은 가게의 경계가 어디까지 밀려 왔는지를 헤아렸고, 1989년식 회벽 너머의 그림자가 5월의 햇빛에 어떻게 늘어나는지를 적었다.

은천로17길 초입에서 — 이주 공고와 빈 우편함

오전 11시 4분, 봉천역 4번 출구에서 은천로17길을 따라 오르막을 걸었다. 입구에서 50미터쯤 들어가자 전봇대마다 같은 모양의 이주 공고가 붙어 있었다. 종이는 5월 첫 주에 새로 갈아 붙인 듯 모서리가 아직 깨끗했다. 나는 첫 골목에서 다섯 장, 두 번째 골목에서 일곱 장을 셌다. 우편함은 빈 채로 입을 벌리고 있었고, 그 안쪽에는 작년 가을에 도착한 듯한 광고지 한 장이 끝까지 빠지지 않고 끼어 있었다. 골목의 폭은 좁은 곳이 1.8미터, 넓은 곳이 2.4미터쯤이었다.

쇠창살 두른 빈집 아홉, 그 사이 화분 다섯

은천로17길에서 17길 12번지까지 천천히 올라가며 셔터가 내려간 집과 창문이 합판으로 막힌 집을 따로 세었다. 쇠창살을 두른 빈집이 모두 아홉, 그중 다섯 집은 대문 옆 벽에 분필로 호수와 소유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빨간 글씨는 한 달이 채 안 된 것처럼 선명했다. 빈집과 빈집 사이 골목 한 켠에는 누군가 두고 간 화분 다섯이 줄지어 있었다. 채송화가 핀 화분이 셋, 흙만 남은 화분이 둘. 그 옆에 손글씨로 "물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힌 흰 종이가 비닐로 코팅되어 있었다. 글씨를 쓴 손은 떨리지 않았다.

마지막 세탁소 셋과 분식집 하나의 점심

오르막을 7분쯤 더 걸어 사거리에 닿았다. 거기서부터 봉천로 본도로까지 짧은 골목 안에 영업 중인 가게가 모두 일곱이었다. 그중 셋이 세탁소였다. 처음 본 세탁소는 간판의 글자 한 자가 햇볕에 바래 떨어져 있었다. 점심 직전인데도 다림질하는 사장님이 카운터 너머로 보였다. 두 번째 세탁소는 셔터가 절반만 올라간 채 안쪽이 어두웠다. 세 번째 세탁소 옆에는 분식집 하나가 떡볶이 한 그릇 4,500원이라고 적어 두었다. 11시 20분, 손님은 인근 빌라 공사장에서 일찍 점심을 먹으러 나온 듯한 작업복 차림의 남자 둘이 전부였다.

골목 끝 다세대 두 동, 1989년식 회벽의 색

골목 끝에는 1989년식으로 보이는 4층 다세대 두 동이 마주 보고 서 있었다. 회벽은 본래 미색이었을 텐데, 37년치의 매연과 비가 회색에 가깝게 깎아 두었다. 1층 입구의 현관 타일에는 작은 별 모양 문양이 박혀 있었고, 그중 세 칸은 떨어져 검은 모르타르가 드러나 있었다. 우편함은 가구 수보다 두 개가 적었다. 누군가 도중에 떼어낸 자리에는 나사 구멍 둘만 남았다. 옥상에는 안테나가 다섯, 그중 둘은 줄이 끊긴 채 바람에 흔들렸다. 나는 이 두 동이 다음 단계 이주 대상이라는 것을 골목 어귀의 공고문에서 확인했다. 철거 예정일은 2026년 가을이었다.

점심 시간 직전, 사람보다 빈 우편함이 많은 골목

11시 35분, 사거리 평상에 앉아 5분을 쉬었다. 그 사이 골목을 지나간 사람은 모두 네 명이었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들고 나온 남자 둘, 세탁소에서 옷가지를 안고 나온 중년 여자 하나, 그리고 손수레를 끌고 빈집들 사이를 지나간 노인 하나. 같은 시간에 지나간 빈 우편함은 적어도 서른 개가 넘었다. 이 골목에서는 사람보다 빈 우편함의 수가 많아진 지가 꽤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평상 위에서 천천히 인정했다.

재개발 다음 자리에 남을 것 — 메모

오전 11시 50분에 골목을 빠져나왔다. 등 뒤에서 봉천13구역은 5월의 햇빛을 받고 있었고, 골목 안쪽은 여전히 사람보다 빈 우편함의 수가 많았다. 나는 노트에 다섯 줄을 적었다. 빈집 아홉, 화분 다섯, 세탁소 셋, 분식집 하나, 떼어진 우편함 둘. 다음에 이 자리에 들어설 건물이 몇 동이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 건물의 1층 우편함은 처음부터 가구 수만큼 달려 있길 바란다. 그리고 누군가 화분에 물을 주러 다시 올 수 있는 골목이 한 줄쯤 남아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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