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둘째 월요일 점심 12시 40분, 남대문 갈치골목 — 1인분 줄 다섯과 노포 다섯의 김
나는 회현역 5번출구에서 갈치골목까지 도보로 3분이 채 안 되는 거리를 걸었다. 12시 40분 정각, 햇빛은 골목 입구만 베고 안쪽은 그늘이었다. 노포 다섯, 1인분 줄 다섯, 그리고 천장으로 올라가다가 미지근해진 김을 메모해 둔다.
회현역 5번출구에서 갈치골목 입구까지
나는 12시 38분에 회현역 5번출구를 빠져나왔다. 햇볕이 등 뒤로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출구에서 남대문시장 갈치골목 입구까지는 도보로 3분이 채 안 되는 거리다. 보도 폭은 어림잡아 3.2m쯤이었고, 점심을 마치고 빠져나오는 회사원들이 두 명, 세 명씩 마주 걸어왔다. 그들은 거의 모두 셔츠 소매를 한 번 접어 올린 차림이었고, 손에는 일회용 컵 대신 종이 영수증이 쥐여 있었다. 골목 입구의 노점 양산 그늘 아래에서 1초 정도 멈춰 햇빛과 그늘의 경계를 보았다. 햇빛이 베인 자리는 정확히 입구 안쪽 1.8m 지점에서 끝났고, 그 너머는 그늘이었다. 골목은 동서로 길게 누워 있었고, 폭은 약 2.4m. 양옆으로 노포가 다섯 채 마주 보고 있었다.
노포 다섯의 간판
나는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간판을 메모했다. 입구에서 안쪽으로 보아 왼쪽 첫째 집은 빨간 바탕에 흰 글씨, 옆구리에 "1976"이 작게 적혀 있었다. 오른쪽 첫째 집은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 "1981"이 메뉴판 모서리에 박혀 있었다. 왼쪽 둘째 집은 연도 표기 없이 "본가"라는 두 글자만 굵게 강조되어 있었다. 오른쪽 둘째 집은 "1989"라는 숫자를 간판 가운데에 또렷이 박아 놓았다. 가장 안쪽 다섯째 집은 "1973"이라고 적혀 있었고, 글씨가 살짝 닳아 있었다. 다섯 간판은 모두 빨강·노랑·검정의 세 가지 색을 다른 비율로 섞어 쓰고 있었다. 글씨의 굵기와 자간은 가게마다 달랐지만, "갈치"라는 두 글자만은 어느 집이나 다른 글자보다 30%쯤 더 크게 적혀 있었다. 간판 아래로는 같은 메뉴판이 다섯 번 반복되었다. 갈치조림 1인분 1만5천 원, 갈치구이 1인분 1만2천 원, 공깃밥 1천 원. 가격은 같았지만 폰트와 정렬이 달랐다. 같은 가게가 거리 위에서 다섯 번 반복되는 셈인데, 이상하게도 다섯 가게 모두 손님이 있었다.
1인분 줄과 등받이 없는 둥근 스툴
12시 40분 정각. 다섯 집 앞에 늘어선 1인 손님의 줄을 세었다. 왼쪽 첫째 집 앞 세 명, 오른쪽 첫째 집 앞 네 명, 왼쪽 둘째 집 앞 두 명, 오른쪽 둘째 집 앞 다섯 명, 안쪽 다섯째 집 앞 두 명. 모두 합쳐 열여섯 명이 점심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양복 재킷을 입은 사람은 두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베이지 면바지에 옅은 셔츠, 또는 회색 폴로셔츠 차림이었다. 줄을 선 손님들은 거의 모두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지만, 30대 후반쯤 보이는 한 사람은 줄에 선 채로 짧은 통화를 하다가 "오 분만"이라고 말한 뒤 끊었다. 가게 안으로 한두 걸음 들어가 보았다. 의자는 등받이가 없는 둥근 스툴 다섯 개, 테이블은 폭 60cm짜리 직사각형 두 개. 1인 손님 자리는 벽에 붙은 카운터처럼 좁고 길었다. 옆 사람의 팔꿈치와 내 팔꿈치 사이가 약 22cm. 옆자리 손님은 갈치조림을 절반쯤 먹다 말고 공깃밥을 한 그릇 더 시켰다.
화구 옆 김의 온도와 천장의 누런 자국
조리대는 출입구에서 1.5m쯤 들어간 자리에 있었다. 화구 네 개에 양은 냄비 네 개가 동시에 끓고 있었고, 김이 천장 형광등 쪽으로 거의 수직으로 올라갔다. 김이 닿는 자리는 천장 페인트가 살짝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화구 위로 손을 내밀어 본 것은 아니지만, 끓고 있는 양은 냄비의 옆면은 어림잡아 섭씨 90도 가까이로 보였다. 김 자체는 천장에 닿기 전에 식어 60도쯤 되는 듯한 미지근한 안개로 변해 손님들의 셔츠 등판 위에 내려앉았다. 어떤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등 뒤 셔츠에 약간의 습기가 어룽져 있는 것이 보였다. 가게의 시계는 12시 4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1시까지밖에 남지 않은 손님들이 양은 냄비 안의 갈치를 빠르게 부서뜨렸다. 부서진 갈치 살은 무와 함께 무너지며 국물 색을 더 진하게 바꾸어 놓았다. 양은 냄비의 손잡이에는 행주가 한 겹씩 덧대어져 있었고, 행주의 끝자락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늘어져 있었다.
골목 끝에서 본 김의 농도와 줄의 길이
나는 골목 끝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골목의 동쪽 끝, 즉 입구의 반대편은 다시 햇빛이었다. 햇빛은 회현지하상가 출구 4번 쪽으로 빠져나가는 길에 다시 베어 있었다. 골목 끝에서 뒤를 돌아보니, 다섯 채의 노포는 한 장의 흑백 사진처럼 거의 같은 톤으로 보였다. 차이가 있다면 줄의 길이뿐이었다. 줄이 가장 긴 오른쪽 둘째 집의 김이 가장 진했고, 줄이 가장 짧은 왼쪽 둘째 집의 김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손님의 수가 김의 농도를 정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어떤 가게는 점심을 끓이고 있고, 어떤 가게는 점심을 식히고 있었다. 50년 가까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메뉴를 끓여 온 가게의 김이 옅어진다는 것은, 다음 점심을 위해 잠시 화구를 줄였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골목 끝에서 햇빛 쪽으로 한 발 내디딘 순간, 등 뒤로 다섯 채의 노포가 한 호흡으로 다시 김을 올리는 것이 보였다. 1973, 1976, 1981, 1989. 연도 표기가 없는 가게 하나를 빼면, 다섯 가게의 평균 연차는 1980년 즈음이었다.
결론 메모
2026년 5월 11일 월요일, 점심시간이 한 시간만 더 길었다면 나는 다섯 가게의 갈치조림을 모두 한 번씩 먹어 보았을 것이다. 줄이 가장 긴 집이 가장 맛있는 집인지, 줄이 가장 짧은 집이 가장 빠른 집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김의 농도와 줄의 길이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메모해 둘 만하다. 다음 월요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돌아와 김을 다시 세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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