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둘째 일요일 점심 12시 40분, 서대문 유진상가 — 1970년 홍제천 위 콘크리트 본동의 1층 통로 다섯
일요일 점심을 먹고 무악재에서 홍제역 쪽으로 걸었다. 유진상가 1층은 천장이 낮고, 한낮의 빛이 통로 입구에서 끊겼다. 1970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홍제천 위에 다리처럼 얹혀 있어서 발밑에서 물소리가 작게 났다. 콘크리트 두께를 손바닥으로 가늠해보다가, 통로 다섯 개를 차례로 걸었다.
홍제역 4번 출구에서 본동까지의 두 블록
지하철 3호선 홍제역 4번 출구로 나오면 통일로가 곧장 평지로 펼쳐진다. 거기서 무악재 방향으로 두 블록쯤 걸으면 길 가운데 거대한 회색 덩어리가 가로로 누워 있다. 그게 유진상가 본동이다. 폭이 약 8m, 길이가 어림잡아 200m가 넘는 직사각형 콘크리트가 도로 위에 떠 있다. 사람들이 그 아래로 차를 몰고 들어가고, 또 사람들이 그 위 2층, 3층의 좁은 외부 복도를 밟고 지나간다. 다리 같기도 하고 성벽 같기도 한 이 건물 앞에서 나는 잠깐 멈춰서 위쪽 창문을 셌다. 도로면에서 본동 정면을 바라봤을 때, 2층 창은 한 칸당 약 1.2m 폭으로 일정하게 반복됐다.
본동 1층 통로 다섯 — 첫째 통로의 천장 높이
본동 1층에는 사람이 가로지를 수 있는 작은 통로 다섯 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뚫려 있다. 차로가 아니라 보행자만 다니는 짧은 터널이다. 첫째 통로 입구에 서서 천장을 올려다봤더니 어림잡아 3.4m쯤이었다. 콘크리트 보가 폭 60cm 정도로 굵게 노출돼 있고, 표면에는 거푸집 자국이 세로로 길게 남아 있다. 1970년에 부어 굳힌 자국이 그대로다. 보 사이의 슬래브 면에는 옛 형광등 자리에 동그란 콘크리트 매립박스가 그대로 박혀 있고, 거기서 새 LED 등이 짧은 전선을 내고 매달려 있었다. 새 등의 빛이 닿지 않는 콘크리트 면은 56년 묵은 회색이다. 손바닥을 갖다 댔더니 표면이 차고 거칠었다.
둘째·셋째 통로 — 발밑의 홍제천
둘째 통로는 첫째에서 약 40m쯤 떨어져 있다. 그 사이는 본동의 외부 측면이고, 걸으며 좌측 인도를 따라가면 본동 기둥들이 일정 간격으로 도로 위에 박혀 있는 게 보인다. 그런데 이 본동의 진짜 특이한 점은 도로 위가 아니라 그 아래에 있다. 본동의 한쪽 끝 부분은 도로가 아니라 홍제천 위에 얹혀 있다. 셋째 통로 부근에서 인도를 벗어나 살짝 옆으로 비켜서면 콘크리트 슬래브 아래로 깊이 약 6m쯤 되는 골이 있고, 그 바닥에 홍제천이 흐른다.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비가 두어 번 왔던 덕분에 물이 제법 차서, 점심 햇빛에 옅게 갈색으로 일렁였다. 본동은 이 천 위를 다리처럼 가로지르며 동쪽 끝에서 무악재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그 구조 때문에 1970년 당시에는 "유사시 폭파해 적 진격을 막는 방어 구조물"이라는 설계 의도가 함께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시민 자료실 게시판에 적혀 있었다. 콘크리트 벽 두께가 일반 상가보다 두꺼운 이유로 그 점이 자주 인용된다.
넷째 통로의 우편함과 1972 손글씨
넷째 통로의 입구 옆 벽에는 좁고 긴 우편함 묶음이 박혀 있다. 호수당 한 칸씩, 두 줄로 모두 24칸. 가운데 칸 하나의 알루미늄 면에는 손글씨로 "1972 김"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페인트가 아니라 송곳 같은 도구로 긁어낸 자국이다. 칸 안쪽에는 전단지 한 장이 접혀 들어가 있고, 위쪽 모서리에는 우체국 도장 자국이 살짝 남아 있다. 옆 칸은 비어 있고, 또 옆 칸 입구에는 갈색 테이프가 두 줄 가로로 붙어서 우편 거부 표시처럼 보였다. 통로 안쪽으로 두어 발 들어가 보니 천장에서 작은 환풍기 한 대가 돌고 있었다. 환풍기 날 끝의 먼지가 검게 굳어서, 1970년대식 회색 콘크리트와 비슷한 색이 되어 있었다.
다섯째 통로에서 본 본동 끝의 곡선
다섯째 통로는 본동의 무악재 쪽 끝에 가깝다. 거기서 통로 밖으로 다시 나와 본동의 끝을 정면에서 봤더니, 직사각형이라고만 생각했던 본동의 모서리가 위쪽으로 약간 둥글게 마무리돼 있는 게 보였다. 1970년대 초 한국 건축에서 자주 등장한 단순한 곡면 처리다. 모서리의 둥근 면을 따라 빗물 자국이 검게 흘러 있었고, 그 흐름이 1층까지 직선으로 떨어지지 않고 한 번 휘어 옆으로 넘어가 있었다. 옆으로 넘어간 자국 끝에는 옛 환기 그릴이 그대로 박혀 있다. 가로 약 30cm, 세로 60cm의 사각 그릴인데, 1970년에 처음 끼운 그대로 같다. 손가락으로 그릴 가장자리를 만지니 페인트 가루가 살짝 떨어졌다.
건너편 보도에서 본 본동의 그림자
점심 1시 5분쯤, 길 건너편 보도로 옮겨가서 본동 전체를 다시 봤다. 햇빛이 본동의 동쪽 면을 비추고, 그 그림자가 도로 위에 가로로 길게 떨어져 있다. 그림자 안으로 들어간 차들은 잠깐 어두워졌다가, 본동을 지나면 다시 밝아진다. 그림자의 폭이 정확히 본동 폭만큼이었다. 도로 위의 사람들은 본동을 그저 "유진상가"라고만 부르고 지나가지만, 1970년의 콘크리트 다리이자 천 위의 상가이자 한때 방어 구조물이라고 불렸던 이 본동은 56년째 이 자리에 같은 두께로 누워 있다. 무악재 쪽 끝의 둥근 모서리, 1972 김의 우편함, 통로 다섯의 천장 보. 그것들이 점심 햇빛 아래 그대로 있었다.
결론 메모
오늘 점심의 유진상가는 콘크리트의 시간을 1970년에서 멈춰둔 채로 다리처럼 누워 있었다. 통로 다섯의 천장 보, 우편함의 손글씨, 본동 끝의 둥근 모서리. 56년이 지난 콘크리트의 회색은, 새 LED의 흰빛 옆에서도 자기 색을 잃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은 것을 기록한다는 건, 이렇게 여전히 있는 것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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