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셋째 일요일 오후 12시 40분, 익선동 종로구청 옆 골목에서 — 20대 남자 일요일 점심 옷차림 13벌
5월 셋째 일요일, 익선동 종로구청 별관 옆 좁은 골목에 12시 40분쯤 들어섰다. 점심 자리 기다리는 줄이 한식집 앞에 열다섯 명, 카페 앞에 일곱 명 늘어서 있었다. 그 줄에서 내가 본 20대 남자 13명의 일요일 점심 옷차림을 한 벌씩 기록한다.
1. 익선동 일요일의 기준 기온
나는 골목 입구의 약국 처마 아래에 섰다. 한 시간 전에 본 기상청 앱은 낮 최고 23도, 체감 21도, 남서풍 초속 2.4미터라고 했다. 손등에 닿는 바람이 미지근했고, 약국 옆 자판기 위 캔커피는 미지근한 쪽으로 진열돼 있었다. 12시 40분 기준, 줄 선 사람들 절반은 외투를 벗어 가방 손잡이에 묶고 있었다. 5월 셋째 일요일 점심의 익선동은 봄옷과 여름옷이 한 줄에 겹치는 시간대였다.
2. 셔츠와 티셔츠 비율 — 13명 중 셔츠 5, 반팔 티 6, 긴팔 티 2
차림을 가까이서 셀 수 있는 5미터 구간을 정해 한 벌씩 적었다. 오픈칼라 셔츠 단추 두 칸 푼 차림이 3명, 정장 셔츠를 캐주얼하게 입은 차림이 2명. 반팔 티는 6명 중 4명이 흰색 또는 옅은 회색의 무지였고, 2명만 작은 자수 로고가 가슴께에 있었다. 긴팔 티 2명은 모두 면 100퍼센트 두께가 얇은 라이트 그레이였다. 13명 중 9명이 흰색·회색·아이보리·연베이지 같은 옅은 색을 위쪽에 올렸고, 진한 색은 검정 티 2명, 곤색 셔츠 1명, 카키 셔츠 1명이었다.
3. 하의 — 와이드 데님이 절반을 넘었다
아래쪽은 더 일관됐다. 와이드핏 청바지 7명, 슬랙스 3명, 치노 1명, 트레이닝 팬츠 1명, 카고 1명. 13명 중 7명이 와이드 데님을 골랐다는 건 익선동 골목의 일요일 점심 풍경이 작년 가을부터 굳어진 흐름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색은 인디고 진청이 4명, 라이트 워시드가 2명, 검정 데님이 1명. 길이는 모두 발등을 살짝 덮거나 한 번 접어 입었고, 단 한 명도 발목을 드러내는 짧은 기장을 입지 않았다. 트레이닝 팬츠 한 명은 회색 조거였는데, 위에 옅은 셔츠를 받친 덕에 골목에서 튀지 않았다.
4. 신발 — 운동화 9, 가죽 신발 3, 샌들 1
발끝을 보는 데 가장 오래 걸렸다. 흰색 로우탑 운동화가 5켤레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회색 메시 러닝화 2켤레, 검정 어글리 스니커즈 2켤레. 가죽 신발은 모두 로퍼였고 그중 두 명이 양말 없이 발목을 드러낸 차림이었다. 샌들은 한 명뿐이었는데, 13명 중 가장 늦게 줄에 합류한 사람이었다. 발등을 보면 그가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짐작이 갔다. 메시 러닝화 두 명만 양말이 발목 위로 올라왔고, 나머지 11명은 양말이 신발 안에 가려졌다.
5. 가방과 액세서리 — 작아진 크로스백
13명 중 8명이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중 6명이 한 손바닥 크기의 작은 크로스백을, 1명이 토트, 1명이 백팩이었다. 작은 크로스백은 모두 검정 또는 짙은 회색의 나일론 재질이었고, 일부 가방에는 카라비너로 카드지갑이 외부에 한 번 더 걸려 있었다. 손목에는 메탈 시계 2명, 가죽 시계 1명, 나머지는 빈손이거나 가는 실 팔찌. 안경은 13명 중 6명이 썼고, 그중 4명은 둥근 메탈 프레임이었다. 모자는 한 명도 쓰지 않았다.
6. 13벌을 한 줄로 정리하면
다음 주에 익선동에 일요일 점심을 먹으러 갈 20대 남자가 옷장을 열었을 때 가장 안전한 답은 이렇게 정리된다. 위쪽은 옅은 색 무지 셔츠 혹은 흰색 반팔 티, 아래쪽은 인디고 와이드 데님, 발은 흰색 로우탑 운동화, 어깨엔 한 손바닥 크기의 검정 나일론 크로스백. 13명 중 적어도 5명이 이 조합 안에 들어와 있었다. 다만 이 안전한 조합 바깥에서 가장 눈에 띈 사람은 카키색 셔츠에 검정 데님, 검정 로퍼를 신은 한 명이었다. 위아래 색의 대비가 가장 컸고, 골목 끝에서 처음 봤을 때 가장 또렷하게 윤곽이 잡혔다.
마치며 — 일요일 점심의 익선동은 색을 가라앉힌다
줄이 줄어들면서 한식집이 첫 손님을 받았고, 나는 약국 처마에서 한 걸음 나왔다. 13벌의 옷차림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일요일 낮의 색은 평일 출근길보다 한 톤씩 가라앉아 있었고, 다들 약속 자리에 무리하지 않으려는 듯 옷의 결이 부드러웠다. 다음 일요일에는 골목을 한 블록 옮겨 운현궁 쪽 카페 골목을 같은 시간에 다시 세어 볼 생각이다. 익선동 골목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한 주 차이를, 옷차림은 가장 먼저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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