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현동 구 벨기에영사관 — 5월 셋째 토요일 점심 12시 41분, 사당역 6번 출구 뒤 1905년 르네상스풍 본관 한 채
사당역 6번 출구로 나와 남현동 골목을 따라 4분쯤 걸으면, 회벽이 하얗고 정면에 네 기둥이 선 본관 한 채가 나온다. 1905년 회현동에 지어진 구 벨기에영사관이 1983년 이곳으로 옮겨 와 지금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관으로 쓰인다. 토요일 점심, 나는 그 마당에서 한 시간을 걸었다.
사당역 6번 출구 — 12시 41분, 우회로 360미터
지하철 4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사당역에서 6번 출구로 올라오면,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사당동 골목이다. 좌측에 김밥집 둘과 편의점 하나, 직진으로 30미터쯤 가면 횡단보도가 나오고 그 너머에 남현동이라는 행정동이 시작된다. 정확히는 관악구 남현동 1059번지. 도로명 주소로는 남부순환로 2076. 사당역에서 본관까지 직선거리는 약 240미터지만, 사당대로의 차량 흐름을 피해 안쪽 골목으로 돌면 360미터쯤 된다. 나는 그 우회로를 택했다. 5월 셋째 토요일 12시 41분의 햇볕은 정수리 위에서 거의 수직으로 떨어졌고, 골목 안쪽의 회양목 그림자만 길어졌다.
1905년 회현동에서 옮겨 온 한 채
본관은 1905년 회현동 2가에 처음 지어졌다. 당시 대한제국 주재 벨기에 영사관 청사로 쓰였다. 설계는 일본인 건축가 코다마 후지에로 알려져 있고, 르네상스 양식을 기본으로 정면에 이오니아식 기둥 네 개를 세웠다. 1970년대 후반 상업개발로 회현동 일대가 재정비되면서 건물 보존이 결정되었고, 1982년부터 1983년에 걸쳐 현 위치로 이축됐다. 벽돌 한 장 한 장에 번호를 매겨 해체하고, 한강 이남으로 옮겨 다시 쌓아 올렸다는 기록이 안내판에 짧게 적혀 있다. 사적 제254호로 지정된 시점이 1977년 11월이라는 사실도 같은 안내판에서 확인했다.
정면 네 기둥과 회벽 — 양식 명사들 사이에서
본관은 지상 2층, 지붕 위 다락까지 합치면 약 12미터 높이로 보인다. 정면의 네 기둥은 이오니아식이고, 기둥 사이의 간격은 거의 같지만 가운데 두 기둥의 간격이 약간 더 넓다. 전공자가 아닌 내 눈에도 그 미세한 차이가 가운데 현관을 강조한다는 것이 보인다. 외벽 마감은 화강석과 흰 회벽의 조합이다. 1층은 거친 면의 러스티케이션, 2층은 매끄러운 마감으로 위아래가 다른 질감을 보여 준다. 창의 비율은 거의 1대 1.7. 사당대로 쪽에서 보면 단정하다 못해 조금 보수적인 건물이지만, 마당 안쪽에서 올려다보면 처마 아래의 코니스 장식과 창대의 작은 까치발이 의외로 세밀하다. 100년이 넘은 건물치고는 회벽의 균열이 적다. 1983년 이축 때 다시 마감했다는 안내가 정확해 보인다.
본관 2층 — 영사 집무실이 미술관 전시실이 된 자리
1층은 기획전시실, 2층은 상설전시 공간이다. 토요일 12시 50분, 입장료는 무료였다. 2층 중앙 홀의 천장 높이는 약 4.6미터로 가늠된다. 동쪽 방의 창에는 원형 채광창이 한 칸 더 얹혀 있고, 그 아래의 벽은 옅은 미색이다. 이 방이 영사 집무실이었다는 안내가 작은 글씨로 붙어 있다. 100년 전 책상이 있었을 자리에 지금은 한국 동시대 회화 작품 다섯 점이 줄을 맞춰 걸려 있다. 나무 마룻바닥은 이축 당시 부분 교체된 듯 색이 두 톤으로 갈렸다. 창밖으로는 회양목 울타리 너머 사당대로의 정수리만 보였다. 100년 전 영사가 그 자리에 서서 무엇을 보았을지 잠시 상상했지만, 그 시절의 회현동 풍경은 내 머릿속에 없었다.
마당과 회양목 — 5월의 그림자와 한낮의 정적
본관 앞 마당은 30평쯤이다. 회양목 다섯 그루가 정면을 따라 일렬로 심어져 있고, 그 뒤로 향나무 세 그루가 둘러섰다. 토요일 12시 58분의 그늘은 짧고 또렷했다. 마당에 놓인 벤치 둘 중 왼쪽 벤치는 그늘 안에, 오른쪽 벤치는 햇볕 한가운데에 있었다. 나는 그늘 쪽에 앉아 페트병 물을 두 모금 마셨다. 새가 한 마리, 회양목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다 날아갔다. 옆 벤치에는 60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도시락을 펴고 있었고, 그 옆 잔디 가장자리에는 아이 둘이 그림책을 들고 앉아 있었다. 사당역 6번 출구의 차량 소리는 골목 두 번을 돌아오는 동안 거의 다 가라앉아 있었다. 회현동에서 이축된 건물이라는 이력을 잠시 잊으면, 이 본관은 그저 남현동의 오래된 한 채처럼 자리 잡아 있었다.
마치며 — 다음 산책 메모
건축물을 옮긴다는 행위는 보존인 동시에 변형이다. 같은 벽돌, 같은 기둥, 그러나 마당과 빛은 다르다. 100년 전 이 건물이 회현동에 서 있을 때의 빛과, 2026년 5월 셋째 토요일 12시 41분의 사당 남현동의 빛은 같을 수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본관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다음 산책은 1922년 명동성당 본당과, 같은 시대를 통과해 자리를 지킨 또 하나의 회벽 건물로 잡았다. 같은 토요일 점심 시간대, 같은 햇빛 각도로 다시 만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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