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첫 목요일 점심 12시 50분, 효창공원 의열사 앞 그늘 — 한지후의 일기 19

점심을 김밥 한 줄로 때우고, 효창공원 의열사 앞 그늘 벤치에 앉아 30분쯤 가만히 있다 왔다. 5월 첫 목요일은 햇살이 너무 강해서, 잠깐만 앉아도 셔츠 등판이 따끈해졌다. 사라지는 것을 적기보다, 그냥 거기 있는 것을 적기로 한다. 한지후의 일기 19번째.

1. 효창공원 정문, 12시 47분

효창공원역 1번 출구로 나와서 효창원로를 따라 6분쯤 걸으면 정문이 나온다. 5월 7일 목요일 12시 47분, 정문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은 나 포함 다섯. 그중 양복 윗도리를 벗어 한 손에 든 사람이 셋, 정장 차림 여성 한 명, 그리고 큰 카메라를 멘 노인 한 명. 노인은 건너편에서 사진을 찍을 사이도 없이 한 번에 길을 건넜다.

정문 안 광장은 생각보다 비어 있었다. 평일 점심 시간에 공원에 일부러 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걸, 들어가서야 알았다.

2. 의열사로 올라가는 계단, 14단

광장 왼쪽으로 의열사 안내판이 있고, 거기서부터 14단짜리 짧은 돌계단이 시작된다. 한 단의 높이는 대충 15센티쯤. 계단 옆 벚나무는 이미 잎이 다 났고, 4월에 한 번 떨어진 꽃잎이 콘크리트 모서리에 검게 눌어붙어 있었다. 계단 끝에서 의열사 처마가 보인다.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 세 분의 영정을 모셨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계단 옆 벤치 두 번째에 앉았다. 그늘이 정확히 어깨에서 무릎까지만 덮였다.

3. 그늘 벤치, 12시 53분의 소리

벤치에 앉아서 1분쯤 그냥 귀를 열어둔다.

가까운 데서 새 한 마리가 짧게 두 번 운다. "찌이, 찌이." 그런데 두 번째가 첫 번째보다 0.5초쯤 길었다. 멀리서 효창동 쪽 골목의 자동차 클랙슨, 한 번. 그 뒤에 긴 침묵이 6초. 다시 새. 노인 두 분이 등 뒤 산책로를 천천히 지나가며 나누는 말소리는 너무 작아서 단어가 붙지 않고 그냥 음악처럼 들렸다.

이상하게 점심을 먹는 동안엔 안 들리던 것들이, 김밥을 다 먹고 종이만 손에 들고 있을 때 다 들렸다.

4. 백범김구 묘소 쪽 산책로, 12시 58분

벤치에서 일어나서 의열사를 등지고, 백범김구 선생 묘소 쪽 산책로로 4분쯤 걸어 올라갔다. 산책로 폭은 어림으로 2미터쯤. 양 옆 화단에는 영산홍이 아직 군데군데 분홍빛이 남았고, 그 사이로 5월 햇살이 갈래갈래 들어와 바닥 흙에 점박이 그늘을 만들었다.

묘소 앞 광장까지 올라간 사람은 나 한 명뿐이었다. 광장 한가운데 비석 앞에 서서, 잠깐 가방을 내려놓고 이마를 닦았다. 셔츠 안쪽이 미지근했다. 손목 시계는 12시 58분.

말을 하지 않고 1분쯤 서 있었다. 사라지는 것을 적는 사람이지만, 사라지지 않고 남기로 결정된 것 앞에서는 그냥 서 있어야 한다는 게 맞는 것 같았다.

5. 내려오는 길의 손때 — 의열사 난간

내려오는 길에 의열사 옆 철제 난간을 손으로 한 번 짚었다. 난간 위쪽 칠은 거의 다 벗겨져서 회색 금속이 그대로 드러났고, 손바닥에 미세한 가루가 묻었다. 페인트가 산화한 것 같은 냄새. 손등으로 셔츠 옆구리에 한 번 닦고, 다시 정문 광장 쪽으로 내려왔다.

광장에는 어느새 도시락 가방을 든 회사원 둘이 새로 앉아 있었다. 점심을 거의 끝낸 시간이라, 한 명은 빈 도시락통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한 명은 이어폰을 빼서 가방에 넣고 있었다.

6. 정문 앞 9번 마을버스 정류장, 13시 14분

정문을 다시 빠져나와서 9번 마을버스 정류장에 섰다. 13시 14분. 효창공원역으로 돌아갈지, 그냥 효창동 골목을 한 바퀴 더 걸을지 정류장 앞에서 1분쯤 서서 정했다. 내가 1분쯤 정하는 동안, 9번 버스는 신호 두 번을 지나서야 왔다.

결국 버스를 안 탔다. 골목을 한 번 더 돌고 가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끝나도 햇살은 그대로니까.

결론 메모

오늘은 사라지는 것을 적지 않고, 그냥 거기 있는 것을 적었다. 그늘의 길이, 새 울음의 0.5초 차이, 난간의 가루, 산책로 폭 2미터. 한지후의 일기는 어떤 날엔 이런 식으로도 쓰여야 한다. 19번째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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