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둘째 금요일 정오, 연건동 28-2 — 대한의원 본관 시계탑과 1908의 벽돌

5월 둘째 금요일 정오 무렵, 종로5가에서 연건동 28-2의 대한의원 본관(현 서울대학교 의학박물관)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1908년의 붉은 벽돌과 시계탑이 한낮 햇살에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시계탑 아래 그늘에 모인 점심시간 직장인들의 자리를 짧게 적어둔다.

정오 12시 4분, 종로5가에서 연건동까지 7분 걸음

종로5가역 4번 출구에서 대학로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 시각은 정확히 12시 4분이었다. 이대병원 앞 사거리 신호 한 번, 연건동 사거리 신호 한 번, 그렇게 두 번을 기다리면 7분쯤이 걸린다. 길 폭은 24m 안팎의 4차선이고, 점심시간이라 인도엔 직장인 줄이 길었다. 가게 차양 아래로 햇살의 경계가 정확히 떨어지는 시간. 12시 11분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문 앞에 도착했다. 정문 안으로 30m쯤 들어가면 잔디밭 한가운데 붉은 벽돌의 본관이 서 있다. 처음 봤을 때 1908년이라는 햇수가 거리감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너무 정연해 보여서 그렇다.

1908의 붉은 벽돌, 줄눈의 색이 다섯 가지

본관에 가까이 가서 정면 벽을 자세히 보면, 이 건물이 한 시간대에 단번에 만들어진 게 아님이 드러난다. 붉은 벽돌은 균질하지 않다. 가장 오래된 부분은 검붉은 색에 가깝고, 한국전쟁 이후 보수된 부분은 살짝 주황빛이 도는 벽돌이다. 줄눈의 색도 다섯 가지쯤 된다. 회색, 흰색에 가까운 회색, 모래색, 짙은 회색, 그리고 군데군데 검정. 한 면 안에 다섯 시대가 함께 있다. 정면 가운데 부분의 벽돌은 한 칸의 크기가 약 22cm × 10cm 정도였다. 손바닥을 갖다 대 보면 다섯 칸이 손목 안쪽까지 정확히 들어왔다. 1908년의 벽돌은 손에 비해 살짝 작은 편이었다.

시계탑 — 9.5m, 그러나 정확하지 않은 시간

본관 정중앙에는 시계탑이 솟아 있다. 정면에서 올려다보면 지붕의 가장 높은 첨두까지 9.5m쯤. 시계 문자판은 로마자로, 직경은 1.3m가량 되어 보였다. 12시 19분에 올려다본 시계는 12시 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2분이 늦다. 운영하는 박물관 직원이 자주 맞춰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시계가 살짝 느린 시계탑은 묘하게 신뢰가 간다. 1908년에 지어진 건물이 2분쯤 느린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게 어울린다는 생각. 시계탑 아래쪽 박공면엔 흰 페인트로 칠한 별 모양 환기구가 두 개, 그 양옆에 작은 원형 창이 하나씩. 원형 창에는 햇살이 정확히 정오 즈음에 가장 깊이 들어간다.

본관 뒤 그늘 — 점심 12시 25분, 직장인 일곱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마로니에 잎과 단풍나무 잎이 섞인 그늘이 본관 외벽을 따라 길게 늘어진다. 12시 25분, 그늘 안 벤치에 직장인 일곱이 앉아 있었다. 셋은 도시락, 둘은 편의점 김밥, 둘은 커피만. 한 사람의 자켓 안감 색이 5월 햇살에 살짝 비쳐 인디고였다. 맞은편엔 서울대 의대 학생으로 보이는 두 명이 종이를 펼쳐 놓고 무언가를 빠르게 적고 있었다. 본관 외벽의 1908년 벽돌은 점심시간 사람들의 등받이가 되어주고 있었다. 건물의 첫 용도는 의료였고, 한 세기쯤 지나서는 점심시간 직장인의 등받이가 되었다. 도시는 건물의 다음 쓰임을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자리에서 정한다.

마로니에공원 쪽 시야 — 1908과 1979 사이의 70년

본관 앞 잔디밭 가장자리에 서서 마로니에공원 방향을 보면, 시야 안에 두 시간대가 함께 들어온다. 가까이엔 1908년의 본관, 멀리엔 김수근이 1979년에 마무리한 옛 공간사옥과 동숭동의 70년대 콘크리트 건축들이 있다. 두 시간대 사이의 거리는 약 280m, 시간 차는 71년. 그 사이엔 식민지·해방·전쟁·산업화의 한국 근현대 70년이 그대로 압축돼 있다. 한쪽은 붉은 벽돌, 한쪽은 회색 노출콘크리트. 같은 시야 안에 두 재료가 같이 보이는 도시는 흔치 않다. 연건동에서 동숭동까지 280m를 걸으면, 한국 근현대 건축의 한 줄거리를 손바닥 위에 놓고 볼 수 있다.

결론 메모

대한의원 본관은 사라지지 않을 자리다. 사적으로 보호받는 건물이라 셔터처럼 한꺼번에 사라질 일은 없다. 그래도 줄눈의 다섯 가지 색은 천천히 변할 것이다. 다음 5월 정오에 같은 자리에서 시계탑의 분침을 다시 확인해 두려 한다. 변하는 건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다. 보존되는 것도 천천히 변한다. 1908년의 벽돌이 직장인의 등받이가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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