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넷째 화요일 오후 3시 22분, 충정로3가 충정아파트 — 한국 최초 시민 아파트로 알려진 88년 묵은 콘크리트의 외부 계단실
오늘 화요일 오후 3시 22분, 서대문구 충정로3가 골목으로 발을 옮겼다. 한국 최초의 시민 아파트로 불려온 충정아파트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섰다. 1937년에 지어졌다는 풍화된 안내판 한 줄과, 햇빛에 빗금처럼 떨어진 외부 계단실의 그림자가 묘하게 어긋난 채 겹쳤다. 사라지는 것을 기록한다는 말이 오늘은 유난히 무겁게 다가왔다.
충정로3가 골목, 88년 묵은 콘크리트 앞에서
5호선 충정로역 9번 출구에서 미근동 방향으로 200m쯤 걸었다. 골목 어귀에 도착한 시각은 정확히 오후 3시 22분이었다. 충정아파트의 정면은 도로보다 한 단 낮은 자리에 묻혀 있었고, 외벽의 시멘트는 곳곳에 회색 얼룩과 잿빛 노랑이 섞여 있었다. 외벽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어보니 미세하게 가루가 묻어났다. 88년이라는 숫자가 손에 만져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1937년 준공이라면 올해로 정확히 88년. 도시 안에서 사람 두 세대보다 더 긴 시간을 견딘 콘크리트가 내 손바닥에 묻어났다.
외부 계단실의 1.05m 폭과 2.4m 천장
건물의 측면을 따라 걸어가니, 한국 아파트에서 흔히 보기 힘든 외부 계단실이 나타났다. 줄자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한 사람이 어깨를 살짝 비스듬히 해야 통과할 만한 폭이었다. 어림잡아 1m 남짓, 1.05m쯤 되어 보였다. 계단 한 단의 너비는 신발 한 켤레가 정확히 들어가는 정도. 천장은 가만히 올려다보니 2.4m 안팎이었다. 요즘 신축 아파트의 2.3m와 거의 같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1930년대 건축가들이 어떤 표준을 따라 이 척도를 그렸을지, 골목에 서서 한참 궁금해졌다.
4층까지 이어진 손때 묻은 철제 난간
계단실의 가장 인상적인 디테일은 난간이었다. 4층까지 이어진 철제 난간은 두께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검은 페인트가 곳곳에 벗겨져 갈색의 녹이 드러나 있었지만, 손잡이 부분만은 시간이 만든 광택으로 매끄러웠다. 88년 동안 얼마나 많은 손이 이 한 줄의 쇠를 잡고 오르내렸을까. 4층 복도에 다다르자 어느 집 현관 앞에 놓인 화분 두 개와 빨간 양철 통이 보였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표식이 분명히 거기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재개발 고시 안내문과 살아남은 사람들
1층 입구 옆 벽에는 회색 글씨로 인쇄된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충정로3가 정비구역 추진 동의서"라고 적힌 안내문. 정확한 일자는 한 귀퉁이가 가려져 있었지만 도장 자국은 선명했다. 이 건물 역시 언젠가는 재개발의 손에 닿을 것이다. 다만 한국 최초의 시민 아파트라는 상징성 때문에 일부 보존 논의가 꾸준히 있다고 들었다. 한 주민분이 골목에서 종이 박스를 정리하고 계셨고, 짧게 눈인사를 했다. 사진은 찍지 않았다. 누군가의 일상을 풍경으로 박제하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오후 3시 47분, 햇빛이 만든 그림자의 각도
건물의 동쪽 모서리에 서서 손목시계를 봤다. 3시 47분. 계단실의 수직 살들이 만든 그림자가 외벽 위로 약 60도쯤 기울어져 있었다. 광선의 각도가 만들어내는 이 그림자의 풍경은 1937년 봄에도 똑같이 일어났을 것이고, 그때 그 자리에 서 있던 누군가도 이걸 봤을 것이다. 시간은 같은 풍경을 반복적으로 통과시키지만, 그 풍경을 보는 사람의 자리는 매번 단 한 번뿐이다. 그게 산책이 가진 묘한 무게라고, 나는 늘 생각한다.
결론 — 사라지기 전에 본 다섯 줄
오늘 본 콘크리트 외벽, 1.05m 폭의 계단, 2.4m 천장, 4층 난간의 손때, 동쪽 60도의 그림자. 다섯 개의 디테일을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이 건물이 5년 뒤에도 여기 그대로 서 있을지, 또는 사진 한 장만 남기고 사라질지 나는 모른다. 다만 오늘의 한 시간 남짓, 내가 본 것은 분명히 거기 있었다. 사라지는 것을 기록한다는 말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결국 오늘 본 다섯 줄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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