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넷째 일요일 오후 4시 30분, 명동성당 마당에서 — 1898년 고딕 첨탑 23m와 127년 된 벽돌 면

일요일 오후 네 시 반의 명동성당 마당에 23분을 앉아 있었다. 1898년에 올라간 첨탑 23m와 좌우 두 종탑, 그리고 한국산과 중국산이 섞여 쌓인 적벽돌 면을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사라지지 않은 127년의 면 한 겹을 기록해 둔다.

명동역 8번 출구에서 성당까지 270m

오늘 오후 네 시 십육 분에 명동역 8번 출구로 올라왔다. 일요일 오후의 명동은 봄이 끝나가는 햇볕이 비스듬히 들어와 거리 동쪽 면만 환했고, 서쪽은 그늘이 길게 누워 있었다. 8번 출구에서 명동길을 따라 북동쪽으로 약 270m를 걸으면 명동성당 정문이 보인다. 가는 길에 화장품 가게 일곱, 분식 노점 두 곳, 옷가게 다섯을 세어 두었다. 일요일 미사가 끝난 직후라 한복 입은 노부부 셋과 외국인 관광객 무리 둘이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명동성당 정문 앞 횡단보도를 건너자 언덕 위에 첨탑이 정확히 정면으로 보였다. 사진을 잠시 멈춰 찍는 사람들 사이를 비켜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은 24칸이었고, 한 칸 한 칸이 닳아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 있었다. 127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발에 닳은 면이다.

1898년 첨탑 23m와 좌우 두 종탑

명동성당의 정식 이름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이다. 1892년에 착공해서 1898년에 봉헌됐다. 코스트 신부의 설계, 청나라 출신 벽돌공들과 한국인 인부들이 함께 쌓은 라틴십자형 고딕 양식 건물이다.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당에 서서 정면 첨탑을 올려다봤다. 첨탑 높이는 약 23m, 본당 처마까지가 약 14m라고 안내 표지판에 적혀 있었다. 첨탑 아래로는 장미창이 자리 잡았고, 그 좌우로 작은 종탑 두 개가 균형 있게 서 있다. 일요일 오후 네 시 사십 분에 종이 한 번 울렸다. 종소리는 마당을 가로질러 언덕 아래 명동길까지 흘러 내려갔다. 종소리가 멎은 뒤 약 12초간 마당이 조용해졌고, 그 사이에 비둘기 다섯 마리가 동쪽 처마에서 내려와 마당 한가운데에 내려앉았다.

적벽돌 두 종류 — 한국산과 중국산이 섞인 면

본당 외벽에 다가가 손바닥을 댔다. 표면은 따뜻했고 살짝 거칠었다. 안내 자료를 보면 명동성당 벽돌은 두 종류가 섞여 있다. 짙은 회적색은 중국 산둥에서 들여온 것, 옅은 주황빛은 한국 용산공장에서 구운 것이다. 두 색이 일정한 패턴 없이 무작위로 쌓여 면 전체가 얼룩진 그러데이션을 만든다. 가까이서 보면 거친 면, 멀리서 보면 한 덩어리.

벽 한 면에서 한국산 벽돌과 중국산 벽돌의 비율을 대충 세어 봤다. 1제곱미터 안에 약 64개의 벽돌이 들어가 있었고, 그 중 22개가 짙은 색, 42개가 옅은 색이었다. 평균 1:2 정도의 비율로 섞여 있는 셈이다. 모서리 부분은 손때가 깊이 박혀 색이 거의 검정에 가깝게 변해 있었고, 처마 그늘에 가려진 부분은 처음 구워졌을 때의 색에 가깝게 남아 있었다. 127년 동안 햇볕과 비를 어떻게 다르게 맞았는지가 벽 한 면에 적혀 있는 셈이다.

성당 마당 33m × 47m와 일요일 4시의 사람들

본당 앞 마당의 크기는 어림잡아 33m × 47m. 마당 가운데에는 둥근 화단이 하나 있고, 한쪽 끝에 성모상이 서 있다. 일요일 오후 네 시 반의 마당에는 사람이 스물세 명 있었다. 가족 단위가 다섯 팀, 사진 찍는 청년이 여섯, 벤치에 앉아 책 읽는 사람이 둘, 화단을 천천히 도는 노인이 셋. 일요일 마지막 미사가 오후 다섯 시여서 천천히 사람이 더 모이고 있었다.

마당 동편 벤치에 앉아 23분을 머물렀다. 그 사이에 비둘기는 모두 일곱 마리가 마당을 가로질렀고, 미사 시작 종이 한 번 더 울렸다. 종소리에 마당에서 떠들던 아이 둘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뛰었다.

옆쪽 사도회관과 1928년 부속 건물

본당 동쪽 옆으로 사도회관이라는 부속 건물이 붙어 있다. 1928년에 지은 벽돌 건물로, 본당과 같은 적벽돌이지만 색이 조금 더 균일하다. 1898년과 1928년 사이의 30년 동안 벽돌 굽는 기술이 한 단계 안정된 흔적이라고 한다. 가까이서 보면 본당 벽돌은 모서리가 닳아 둥글둥글한데, 사도회관 벽돌은 모서리가 비교적 또렷이 살아 있다. 30년의 시간 차이가 모서리 한두 밀리미터로 남아 있는 셈이다.

사도회관 1층 입구 옆에 작은 우편함이 있었다. 옅은 청색 페인트가 벗겨져 안쪽 철판이 드러나 있었고, 손잡이 부분은 손때로 반들반들했다. 우편함 옆에 붙은 안내문에 따르면 평일 오전 열 시에 우편물을 수거한다고 적혀 있었다.

다시 명동 거리로 내려오기 전 메모

오후 다섯 시 일 분에 일어났다. 23분을 앉았던 벤치 자리에 햇볕이 옮겨와 있었고, 마당의 그림자 길이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약 1.5m쯤 늘어나 있었다. 미사 시작을 알리는 종이 다시 울렸고, 마당의 사람들이 본당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계단을 내려오며 다시 24칸을 셌다. 내려갈 때는 한 칸씩 발걸음이 빨라졌다. 명동길로 돌아 나와 8번 출구 방향으로 걷는 동안, 뒤로 첨탑이 점점 작아지는 걸 두 번 돌아봤다. 1898년에 쌓인 면이 일요일 오후의 햇볕 속에서 한 번 더 따뜻해져 있는 것 같았다.

127년이 한 자리에 같은 모양으로 남아 있는 일은 흔치 않다. 명동성당의 벽돌 면 한 겹은 사라진 것보다 사라지지 않은 것을 기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리 중 하나다. 오후 다섯 시 십팔 분의 명동길은 다시 평소의 일요일로 돌아가 있었다.

댓글

가장 많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