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화요일 어린이날 오전 7시, 청파동3가 청파로47길에서 — 셔터 내린 가게 다섯과 1976년 우편함 둘
어린이날 새벽, 숙대입구역 4번 출구 뒤편 청파동3가를 걸었다. 큰길 한 블록 안쪽에 셔터를 내린 가게가 다섯, 받침에 1976이 새겨진 빨간 우편함이 둘. 청파2재정비촉진지구 사업이 진행되면 도로 라인 안쪽에 들어가는 자리다. 사라지기 전에 한 번 더 적어둔다.
1. 새벽 6시 50분, 숙대입구역 4번 출구
나는 지하철 첫차를 타고 숙대입구역에 내렸다. 4번 출구로 나오면 청파동3가다. 어린이날 아침이라 그런지 큰길은 비었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은 새벽 청소차 운전기사 한 명뿐이었다. 청파로 47길을 따라 위로 걷는다. 길은 좁고, 한쪽으로 약간 기운다. 보도블록은 1980년대 회색 사각이 색을 잃은 채 그대로 깔려 있다. 새벽 공기는 섭씨 17도쯤. 효창공원 쪽 가로등은 아직 켜져 있었다. 휴대폰 시계로 6시 50분, 해가 막 건물 옥상선 위로 올라오는 시각이었다.
2. 셔터 내린 가게 다섯
청파로 47길과 47가길이 만나는 삼거리부터 50미터 안에 셔터를 내린 가게가 다섯이다. 분식 ‘청파분식’, 미용 ‘소라미용실’, 세탁 ‘한일세탁’, 슈퍼 ‘청파수퍼’, 그리고 간판이 떨어져 글자가 두 개만 남은 ‘○사진관’. 다섯 모두 셔터 위에 손글씨 임대 문의 번호가 붙어 있다. 010 번호가 셋, 02 번호가 둘. ‘소라미용실’은 셔터 옆 유리에 1989년 가격표가 종이째 붙어 있었다. 컷 5천 원, 파마 2만 원. 종이는 안쪽에 두 번 접힌 자국이 있고, 위쪽 모서리는 옅은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청파분식’ 셔터 아래에는 라면 박스 두 개가 빈 채로 놓여 있다. 다섯 가게 모두 출입문 위 외등은 떼어진 자리만 남아 있었다.
3. 1976년 우편함 둘
삼거리 모퉁이 전봇대 옆에 빨간 우편함이 둘 서 있다. 본체에 ‘체신부’ 글자가 양각으로 남아 있다. 받침 시멘트에 1976이라는 숫자가 흐릿하게 새겨져 있다. 50년이 지난 우편함이다. 앞면 투입구는 안쪽에서 막아둔 듯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게 회색 테이프로 봉해져 있었지만, 우편함 자체는 페인트가 다섯 번쯤 덧칠된 흔적으로 두꺼워졌다. 옆면에는 누가 칼끝으로 새긴 글자가 남아 있다. ‘ㅈ ㅎ 1996’. 30년 전 어린이날 어디쯤에 누가 적었을 것이다. 두 우편함 사이 간격은 어른 한 사람 너비. 둘이 나란히 선 모양은 형제 같았다.
4. 청파2재정비촉진지구 동선
청파동3가 일대는 청파2재정비촉진지구로 묶여 있다. 정비계획이 결정고시된 뒤 사업 시행 인가 단계로 가는 중이다. 셔터 내린 가게 다섯은 모두 이 구역 안에 있다. 새 정비 도로는 청파로에서 갈라져 청파로47길을 더 곧게 펴는 방향으로 그어진다. 지금 약간 기울어 휘어 들어가는 길이, 도면 위에서는 직선으로 펴진다. 우편함 둘이 선 자리는 그 직선 도로의 차로 라인 안쪽이다. 사업 시행 후에는 사라진다. 가게 다섯 자리 위로는 30층 안팎의 공동주택 동이 두 개 올라간다는 안내문이 골목 안 전봇대에 한 장 붙어 있었다(2026년 4월 인쇄).
5. 20대인 내가 보는 방식
20대가 보기에 청파동3가는 ‘오래된 동네’가 아니라 ‘아직 안 정리된 동네’로 분류된다. 정비 사업이 끝나면 이 골목은 표가 잘 나는 큰길과 표가 잘 나는 신축 두 가지로만 남는다. 그 사이에 끼어 있던 셔터 다섯, 우편함 둘, 보도블록의 1980년대 회색 사각, 전봇대 옆 임대 문의 손글씨는 분류표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사라지기 직전 자리를 한 번씩 적어두는 사람이다. 기록은 보존이 아니다. 기록은 위치를 남기는 일이다. 위치가 남으면, 다음에 누가 같은 자리에 서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셀 수 있다.
6. 마무리 메모
어린이날 새벽 골목에서 가게 다섯과 우편함 둘을 셌다. 사진은 휴대폰으로만 찍었고 본문에 넣지 않는다. 다음 주 같은 시간에 한 번 더 와서, 셔터 위 임대 문의 번호 다섯 개가 그대로인지 확인할 생각이다. 둘이 줄어들거나 새로운 번호가 하나라도 붙으면, 그것 또한 위치를 다시 적을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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