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첫 목요일 새벽 6시 17분, 행당7구역 빈 골목 여섯 — AI 셋이 그린 2031년 같은 자리
재개발 고시가 떨어진 성동구 행당7구역의 골목 여섯을, 5월 첫 목요일 새벽에 직접 한 바퀴 돌았다. 같은 풍경을 ChatGPT, Gemini, Claude 셋에게 똑같은 단어로 묘사해 주고, 5년 뒤인 2031년 5월의 같은 자리를 그려보라고 부탁했다. 셋의 답은 같은 듯 달랐다.
새벽 6시 17분, 행당역 1번 출구에서 행당7구역 입구까지
5월 첫 목요일이다. 행당역 1번 출구에서 나와 마장로 쪽으로 270m쯤, 골목 하나를 꺾으니 행당7구역이라고 적힌 노란 안내문이 보였다. 4월 말에 정비구역 지정 고시가 났다고 한다. 새벽 6시 17분, 그늘은 아직 길고 하늘은 겨우 푸르스름해진 정도였다. 골목은 차 한 대 겨우 지나가는 폭, 시멘트 바닥은 손바닥만 한 균열이 두세 줄 사선으로 갈라져 있었다. 첫 번째 집의 슬레이트 지붕은 끝이 살짝 들떠 있었고, 그 아래 나무문에는 1981이라고 페인트로 적힌 우편함이 못 두 개로 박혀 있었다. 거기에서 시작해 골목 여섯 개를 천천히 걸었다. 한 골목에 평균 4분, 총 26분쯤 걸렸다.
같은 단어를 AI 셋에게 똑같이 건넸다
나는 산책에서 메모한 단어를 그대로 입력으로 썼다. "행당7구역, 좁은 골목 여섯, 슬레이트 지붕 끝 들뜬 집, 1981 우편함, 깨진 시멘트 바닥, 새벽 6시 17분, 그늘 길게, 마장로 쪽 270m. 이 자리가 2031년 5월에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같은 새벽 시간으로 묘사해 줘. 사진을 찍는다면 어디에 카메라를 두고, 무엇을 프레임 안에 두는지도 함께." 같은 문장을 ChatGPT-5o, Gemini 3.5 Pro, Claude Opus 4.6에게 차례로 붙여 넣었다. 답은 평균 380~420자 사이였고, 다음과 같이 갈렸다.
ChatGPT-5o의 2031년 — 가장 매끄러운 미래
ChatGPT는 2031년 5월의 같은 자리를 22층 단지 진입 차로 옆 산책로로 그렸다. 1981 우편함 자리에는 단지 안내 사이니지가 서 있고, 슬레이트 지붕은 단지명이 새겨진 화강석 게이트로 바뀌어 있었다. 카메라는 단지 입구 정면, 사이니지 측면 30도, 새벽 빛이 화강석 표면에 비스듬히 떨어지는 컷을 추천했다. 표현이 매끄럽고, 동선이 깔끔하다. 다만 "균열이 갈라지던 시멘트 바닥"이 단지 안 보도블록으로 너무 자연스럽게 환원되어, 과거가 그 자리에서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한 흔적은 남기지 않았다.
Gemini 3.5 Pro의 2031년 — 가장 차가운 시선
Gemini는 같은 자리를 다르게 보았다. 2031년 5월에도 일부 동은 분양가 갈등으로 공사가 멈춰 있고, 골목 절반은 가림막에 가려져 있다고 답했다. 1981 우편함은 가림막 앞 임시 자재 적치장 옆에 한 채 남아 있고, 슬레이트 지붕 집은 이미 철거된 빈자리에 잡초가 무릎 높이로 자라 있다고 묘사했다. 카메라는 가림막 모서리, 임시 펜스 사이의 좁은 틈에 두라고 했다. 가장 차갑지만, 최근 정비사업의 일정 지연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현실적이기도 했다.
Claude Opus 4.6의 2031년 — 사물의 잔존
Claude는 셋 중 가장 사물에 집중한 답을 돌려주었다. 2031년 5월, 1981 우편함은 단지 한쪽 모퉁이의 작은 마을박물관 진열장에 옮겨져 있다고 했다. 깨진 시멘트 바닥의 한 조각도 같은 진열장에 함께 놓여 있고, 슬레이트의 끝이 들뜬 한 단면은 조명 아래 절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답했다. 카메라는 진열장 유리 너머, 1981이라는 숫자에 초점을 맞추고 단지 밖 새벽빛이 유리에 비치도록 두라고 했다. 가장 시적인 답이었지만, 마을박물관이라는 제도가 그때까지 살아남느냐는 또 다른 질문을 남겼다.
셋의 공통점, 그리고 한 가지 어긋남
세 답에는 공통점이 분명했다. 셋 모두 2031년의 그 자리에 22층 안팎의 고층이 들어섰다고 가정했고, 셋 모두 새벽 6시대의 그늘이 길다는 사실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긋난 한 가지는 1981 우편함의 운명이었다. ChatGPT는 사이니지로 환원했고, Gemini는 임시 적치장 옆에 방치했고, Claude는 박물관 진열장으로 옮겼다. 같은 사물 한 점을 놓고, 매끄러운 미래, 멈춘 미래, 옮겨진 미래가 갈렸다. 어느 미래가 맞을지는 5년 뒤에 와서 보면 알 일이지만, 적어도 오늘 새벽 6시 17분의 1981 우편함은 못 두 개로 나무문에 단단히 박혀 있다.
결론 메모
같은 골목에 대한 셋의 답이 이렇게 갈린 것이,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AI는 한 방향의 미래를 확정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사라질 것 같은 자리에 한 번 더 가야 하고, 1981이라는 숫자는 사진 한 장으로 더 남겨 두기로 한다. 다음 산책은 이번 주말 새벽, 같은 골목 여섯을 한 번 더 걸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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