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망원 산책 5월 셋째 수요일 저녁 6시 17분, 봄 끝자락 캐주얼 워킹스타일 다섯 컷

5월 셋째 수요일 저녁 6시 17분, 나는 합정역 7번 출구에서 망원시장 골목까지 30분쯤 걸었다. 봄의 마지막 일주일이 가까운 저녁 공기 속에서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벼워지면서도 어딘가 망설이는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 사이에서 마주친 다섯 가지 캐주얼 워킹스타일을 짧게 기록한다.

합정역 7번 출구 — 베이지 면바지와 단추 두 칸 푼 셔츠

저녁 6시 17분, 합정역 7번 출구로 올라오자 양화로의 가로수 그늘이 인도까지 길게 누워 있었다. 출구 바로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20대 후반쯤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짙은 베이지 면바지에 흰 옥스퍼드 셔츠, 위 단추는 두 칸 풀려 있었다. 신발은 흰색 캔버스화. 단추 푼 정도가 한 칸이면 단정함, 세 칸이면 과한 인상인데 두 칸은 묘하게 균형이 좋았다. 셔츠 깃이 살짝 위로 서 있어서 정장도 아니고 동네 산책도 아닌, 그 사이에 있는 옷차림이 됐다. 봄 끝자락의 저녁이 딱 그런 옷을 부르는 온도였다.

양화로 23길 — 오버사이즈 셔츠와 카고 반바지의 어색한 동거

7번 출구에서 양화로 23길로 꺾어 들어가니 분위기가 단번에 달라진다. 카페와 작은 갤러리가 늘어선 골목에서, 키 175센티미터쯤 되는 여자가 발목까지 내려오는 오버사이즈 데님 셔츠를 원피스처럼 입고 그 안에 카고 반바지를 받쳐 입었다. 셔츠 소매는 두 번 접어 팔꿈치 위에 걸쳐 두었고, 발에는 검정 메리제인. 오버사이즈와 카고는 사실 보통 서로 다른 무드인데, 셔츠가 워낙 길어서 카고 반바지가 거의 안 보이는 덕에 묘하게 안정감이 살았다. 보통 5월 중순이면 보기 어려운 조합인데 오늘 저녁은 25도 남짓의 애매한 더위라 이런 시도가 가능해 보였다.

망원로 9길 카페 앞 — 린넨 재킷의 미세한 구김

망원로 9길로 들어서서 작은 로스터리 카페 앞을 지날 때, 야외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펴 둔 30대 초반 남자의 옷차림이 인상에 남았다. 옅은 청회색 린넨 재킷, 안에는 회색 라운드 티, 아래는 짙은 네이비 슬랙스. 신발은 다크 브라운 로퍼였다. 린넨 재킷은 입은 지 두세 시간쯤 지난 듯 어깨와 팔꿈치 자리에 미세한 구김이 잡혀 있었다. 그 구김이 오히려 의자에 오래 앉아 일한 시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장 같았다. 일하는 사람의 옷이 약간 흐트러져 보이는 순간, 그 옷이 진짜 옷이 된다.

망원시장 입구 — 슬리브리스와 가벼운 가디건의 손에 든 균형

저녁 6시 41분, 망원시장 입구 쪽으로 다가가니 시장 안 노란 조명이 골목 입구까지 흘러나왔다. 한 여자가 흰색 슬리브리스 톱에 옅은 베이지 가디건을 어깨에 걸치지 않고 한 손에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아직은 입기에 더운데, 곧 해가 떨어지면 식을 거라는 걸 알고 미리 챙긴 옷처럼 보였다. 가디건을 입지 않고 손에 든다는 것은 곧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신호다. 봄 끝자락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옷장의 그 어정쩡한 구간을, 사람들은 손에 옷 한 벌을 더 들고 다니는 방식으로 통과한다.

망리단길 끝 — 발목 양말과 메리제인의 절제

골목을 한 바퀴 더 돌아 망리단길 끝 카페 앞에서 마지막 컷을 봤다. 짧은 발목 양말에 검정 메리제인 슈즈, 그 위로 미디 기장의 카키 스커트, 위에는 회색 크롭 카디건. 발목이 살짝 드러나는 양말의 길이가 전체 옷차림의 비례를 정리해 주었다. 양말이 너무 짧으면 신발 안에 숨어 답답하고, 너무 길면 종아리를 가린다. 그 사이의 1~2센티미터를 일부러 노출하는 선택이 봄 끝자락 워킹스타일의 핵심처럼 느껴졌다.

결론 메모

봄 끝자락의 거리는 "확신"보다 "유보"의 옷이 많다. 슬리브리스와 가디건처럼, 한쪽이 다른 한쪽의 가능성을 들고 다닌다. 오늘 본 다섯 컷 모두 1만 원짜리 신상이 아니라, 손때 묻은 옷의 두 번째 시즌이었다는 점이 인상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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