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둘째 수요일 새벽 6시 50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 41계단을 따라 내려가서 본 콘솔레이션홀의 빛
나는 수요일 새벽 6시 50분에 서울역 1번 출구를 나와 서소문로의 인도를 따라 7분쯤 걸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지만, 지상의 진입광장과 콘크리트 비탈, 그리고 유리문 너머의 41계단은 그 자체로 충분히 걸을 만한 산책지였다. 나는 일단 외벽 한 바퀴를 돌고, 개관 시간(09:30)까지의 두 시간을 메모하기로 했다.
서울역 1번 출구에서 박물관까지의 도보 동선
서울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 서소문로를 따라 남쪽 방향으로 걷는다. 도보 약 600m, 시간으로는 천천히 걸어 7~8분. 길은 평탄하지만 인도 폭이 좁아 자전거가 자주 스쳐 간다. 나는 새벽이라 마주치는 사람은 청소차 한 대와 신문배달 오토바이 두 대가 전부였다. 박물관은 서소문역사공원 안쪽에 묻혀 있어서, 표지판을 보고 들어가지 않으면 그냥 도심 공원으로 지나치기 쉽다. 입구 광장 바닥에는 까만 화강석이 깔려 있고, 안쪽으로 향하는 콘크리트 비탈이 약 8도쯤 부드럽게 떨어진다. 이 비탈의 끝에 41계단이 시작된다.
41계단 — 지상에서 지하 3층까지의 강하
박물관의 진입은 옥상 광장에서 시작해 41개의 콘크리트 계단을 내려와 지하 3층 콘솔레이션홀에 닿는 구조다. 나는 새벽이라 내부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유리문 너머로 계단의 첫 단부터 마지막 단까지가 일자로 보였다. 단높이 약 16cm, 단너비 약 30cm으로 보였고, 양측 벽은 거푸집 자국이 일정하게 남은 노출 콘크리트. 손스침이 없는 깊은 강하라 처음 본 사람은 잠깐 멈칫한다. 햇살이 동쪽에서 비스듬히 들어오면 계단 한쪽 면에만 빛이 쌓여, 마치 계단이 두 가지 톤으로 갈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콘솔레이션홀 — 천창 한 줄에서 떨어지는 빛
지하 3층 끝에 있는 콘솔레이션홀(Consolation Hall)은 길이 약 30m, 폭 약 7m, 천장 높이 약 9m로 추정되는 직육면체의 콘크리트 방이다. 천장에는 한쪽 모서리를 따라 좁고 긴 천창이 하나 뚫려 있어, 시간대에 따라 빛이 바닥을 가로지르며 이동한다. 나는 작년 가을에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본 한 줄의 빛은 분명히 콘크리트 면을 색으로 바꾸어 놓았다. 회색에서 옅은 살구색으로, 다시 푸른 회색으로. 이 방의 용도는 사색이고, 그래서 의자도 단 하나만, 가운데에 놓여 있다.
지상의 옥상광장 — 하늘열림과 빨간 사다리꼴
박물관의 옥상은 마치 야트막한 광장처럼 펼쳐져 있고, 가운데에 사다리꼴의 빨간 강철 조형 한 점이 서 있다. 이 조형은 지하 콘솔레이션홀의 천창 위치를 지상에서 표시해주는 역할도 한다. 나는 새벽 6시 55분 정도에 옥상광장에 올라가 동쪽 하늘을 봤다. 광장 바닥은 화강석 판석이고, 줄눈은 정확히 1m 간격이다. 새벽 빛에 판석의 결이 살짝 푸르스름하게 보였고, 빨간 조형 한쪽 면에는 첫 햇살이 막 닿아 진주황색 띠가 생겼다. 이 옥상에는 벤치가 다섯 개. 나는 가장 서쪽 벤치에 앉아 노트를 폈다.
건물의 시간 — 1816, 1801, 그리고 2019
서소문성지는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의 처형지였고, 1801년 신유박해와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의 순교지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시장이 들어섰고, 광복 후에는 청과물 도매시장이 한참 자리를 차지했다. 이 일대가 박물관과 공원으로 다시 정리된 것은 2019년이다. 설계는 윤웅원, 김정임, 그리고 이종호가 참여한 안이 당선된 결과로, 콘크리트 한 가지 재료로 지상의 공원과 지하의 박물관을 한 호흡으로 묶어냈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옥상광장의 ‘비움’이다. 박물관이 지하로 묻혀 있기 때문에, 지상은 거의 비어 있고, 그 비어 있음이 곧 추모의 형식이 된다.
09시 25분, 개관 5분 전의 줄
나는 두 시간 가까이 옥상광장과 외벽을 돌다가 9시 25분쯤 다시 정문 앞에 섰다. 나 말고 여섯 명이 더 있었고, 그중 두 명은 카메라를 든 70대쯤의 부부였다. 9시 30분 정각, 직원이 유리문을 열고 한 사람씩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들어가는 사람들의 발이 41계단의 첫 단을 디딜 때, 짧게 ‘툭’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이번에는 들어가지 않고, 오늘은 이 외피만 기록하기로 했다. 다음에는 콘솔레이션홀 가운데 의자에 앉아, 빛이 한쪽 면을 가로지르는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걸으면서 적은 짧은 메모
1) 새벽의 박물관 진입광장은 비어 있을수록 강하다. 2) 41계단은 손스침 없는 강하라 그 자체로 의식의 형식이다. 3) 옥상의 빨간 조형은 지하의 빛 통로를 지상에 표시하는 ‘좌표’다. 4) 콘크리트 한 가지 재료로 묶인 공간은 시간이 갈수록 색을 얻는다. 회색은 회색이 아니라, 시간과 빛이 거기에 입혀놓은 다른 회색들이다. 5) 추모의 건축은 화려할 필요가 없다. 비어 있고, 깊이 내려가고, 한 줄의 빛이면 된다.
— 사라지는 것을 기록한다는 말이 박해의 자리에는 다른 무게로 쓰인다. 지하 3층의 빛 한 줄을 기억해 두고, 다음 산책에 그 빛이 어디까지 이동했는지 다시 적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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