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둘째 화요일 오전 8시 40분, 청운동 윤동주문학관 — 옛 가압장과 비워진 물탱크, 시인의 언덕
나는 5월 둘째 화요일 오전 8시 40분쯤 자하문터널 입구에서 창의문 쪽으로 비탈을 올라갔다. 청운동 6-19, 윤동주문학관. 1974년 청운수도가압장이었던 작은 콘크리트 박스가 2012년에 시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난 자리다. 가압장의 흰 벽 두 개와, 옥상에 묻혀 있던 물탱크 두 개가 어떻게 전시실이 되었는지 한 칸씩 걸어 보았다.
자하문 고개의 아침 8시 40분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7022번을 탔다. 효자동을 지나 자하문터널 직전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발 아래로 시야가 트인다. 청운동 비탈은 화요일 아침에도 운동복 차림의 동네 어른들이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창의문 앞 삼거리, 인왕산 등산로 표지판과 시인의언덕 표지판이 같은 기둥에 붙어 있었다. 나는 등산 대신 왼쪽으로 꺾어 윤동주문학관 입구로 향했다. 입구의 작은 마당, 흰 콘크리트 벽 두 개가 비스듬히 마주 서 있고 그 사이로 햇빛이 좁은 직선으로 떨어졌다. 벽 높이는 눈대중으로 약 3.6m. 글자 하나 없는 깨끗한 흰색이 인왕산의 회색 화강암과 부딪쳐 묘하게 이질적이었다.
옛 가압장이 그대로 남은 1관, 시집과 사진
문을 열고 들어선 첫 방이 1관이다. 1974년 청운수도가압장 시절의 콘크리트 박스 외피를 그대로 살린 작은 전시실. 폭은 4m 남짓, 길이는 8m쯤 되어 보이는 직사각형이었다. 천장 높이는 약 4.2m, 위쪽 모서리에 옛 펌프 배관이 잘려나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거친 벽면 앞에 윤동주 시인의 친필 원고 사진과 연희전문 시절 사진, 그리고 첫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 사진이 차분히 걸려 있었다. 안내 데스크 옆 작은 LED는 22도, 습도 47%로 깜빡였다. 가압장이라는 산업 시설의 거친 표면과 시집이라는 가장 정적인 사물이 한 평면에서 부딪치는데, 묘하게 잘 어울렸다. "기존 구조를 그대로 둔다"는 리노베이션의 원칙이 한 방 안에 압축돼 있었다.
천장이 뚫린 2관, 비워진 물탱크의 빛
복도 끝에서 좁은 철문 하나를 더 열면 2관이다. 안내문에 따르면 옥상에 묻혀 있던 두 개의 콘크리트 물탱크 중 하나를 윗부분만 잘라낸 공간이다. 사방 4m 정도의 작은 정사각형, 천장이 완전히 열려 있어 5월 둘째 화요일의 아침 햇빛이 그대로 떨어졌다. 시간은 8시 56분, 빛의 직선은 동쪽 벽 약 60cm 위에서 시작해 바닥의 한 변을 절반쯤 비스듬히 갈랐다. 벽면에는 옛 수위계의 흔적, 검은 곰팡이 자국, 콘크리트 양생 줄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떤 전시 패널도 걸려 있지 않았다. 비우는 것 자체가 전시인 방이었다. 나는 약 4분간 그 안에 혼자 서 있었다. 어디선가 가벼운 바람이 들어와, 윗쪽 빛이 좌우로 1cm쯤씩 흔들렸다.
닫힌 우물처럼 어두운 3관, 영상실
다시 좁은 문을 지나면 3관이다. 다른 한 개의 물탱크를 천장을 막은 채 그대로 남겨 영상실로 만든 공간이다. 들어서면 빛이 거의 사라진다. 천장 가운데에 가로 약 30cm, 세로 약 5cm짜리 슬릿 하나만이 가느다란 띠로 외부의 빛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정면 벽에 작은 빔프로젝트가 윤동주 시인의 생애를 다룬 12분 30초짜리 짧은 영상을 반복 상영 중이었다. 평일 오전이라 관람객은 나 혼자, 그리고 등산복 차림의 60대 부부 한 쌍. 부부는 영상 끝 무렵 흐려진 자막을 가만히 따라 읽다가, 빛이 다시 떠오를 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방은 무엇을 듣는다기보다, 멈춰 있는 시간을 견뎌 보는 방에 가깝다. 가압장 시절의 콘크리트 두께가 약 35cm는 되어 보였다.
시인의 언덕과 윤동주 시비
문학관 출구에서 시인의언덕으로 이어지는 짧은 산책로가 있다. 약 80m쯤 오르면 인왕산 자락의 작은 평지에 윤동주 시비가 서 있다. 시비 앞면에는 「서시」가 새겨져 있었다. 비석의 높이는 약 1.7m, 화강암의 표면은 5월 햇빛 아래에서도 차가웠다. 시비 뒤로 인왕산의 화강암 능선이 보이고, 정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청와대 옛 본관 지붕, 그 너머 광화문 일대 건물들이 안개에 살짝 묻혀 있었다. 등산복 차림의 60대 남자가 시비 앞에서 모자를 벗고 약 1분 정도 그대로 서 있다가, 다시 모자를 쓰고 산길로 사라졌다. 오전 9시 12분, 바람이 한 차례 더 불었다.
결론 메모
윤동주문학관은 부수지 않고 비웠다. 가압장의 벽 두 개를 남기고, 묻힌 물탱크 두 개의 천장만을 다르게 다루어 빛과 어둠을 갈랐다. 사라지는 도시 시설을 기록하는 한 가지 방식이, 이렇게 작은 박스 안에 모두 들어 있었다. 1관의 거친 벽, 2관의 열린 빛, 3관의 닫힌 우물. 화요일 아침의 인왕산 그늘은 이 세 칸을 한 호흡으로 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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