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림동 약현성당 — 5월 넷째 토요일 오전 9시 13분, 1893년 첫 서양식 성당의 좁은 신랑(身廊)에서

나는 토요일 아침 일찍 서울역 뒤편으로 걸어 중림동 약현성당에 닿았다. 1893년 봉헌된 이 작은 벽돌 성당은 우리나라에 처음 세워진 서양식 성당이다. 신랑 폭은 좁고 천장은 의외로 낮은 편이라, 오늘 아침의 빛도 그 폭만큼만 들어왔다.

1. 서울역 13번 출구에서 손기정로로

서울역 13번 출구로 나오면 곧장 손기정로다. 오전 9시 직전, 그늘에 들어가면 섭씨 16도 정도였다. 청파로 쪽 빌딩 그림자가 길어, 손기정체육공원 담장 옆 보도는 아직 차가웠다. 약현성당까지는 도보 7분쯤. 중림동의 경사길은 생각보다 가파르다. 오르막 끝에 빨간 벽돌의 종탑이 한 박자 늦게 시야에 들어왔다. 오전 9시 13분, 정문 안쪽 종탑 시계도 같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2. 마당의 폭, 그리고 1893년의 봉헌

성당 마당은 짧다. 정문에서 본당 입구까지 직선거리로 18보쯤, 어림잡아 15미터가 채 안 된다. 그런데 그 짧은 거리 위에 시간은 길게 쌓여 있다. 약현성당은 1892년 착공해 1893년 9월 23일 봉헌된 우리나라 첫 서양식 성당이고, 설계는 파리외방전교회 외젠 코스트(Eugène Coste) 신부가 맡았다. 명동성당이 1898년에 봉헌되었으니, 그보다 5년 앞선 건물이다. 화강암 기단 위로 붉은 벽돌이 단정하게 쌓였고, 정면은 좌우 두 칸짜리 종탑 없이 가운데에 작은 종탑 하나만 올렸다. 모자란 게 아니라, 그때의 형편에 맞춘 단정함이다.

3. 좁은 신랑, 천장 약 9.2미터

본당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신랑(身廊)의 폭이다. 좁다. 가운데 통로 양옆으로 회중석 의자 한 줄에 다섯 명 정도 앉을 만하다. 폭이 좁으니 천장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약 9.2미터쯤. 명동성당 본당 천장이 약 23미터인 것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된다. 그 대신 측랑 아치 위에 좁고 긴 첨두 창이 다섯 개씩 줄지어 있고, 그 너머에서 들어오는 5월 아침 빛이 회중석 마룻바닥에 길고 좁은 띠로 떨어졌다. 빛의 폭이 곧 신랑의 폭이다.

4. 1998년의 화재, 그리고 2000년의 복원

약현성당은 1998년 2월 11일 새벽에 큰 화재를 겪었다. 본당 내부 대부분이 탔고, 벽돌 외벽만 남았다. 지금 우리가 보는 본당은 2000년에 원형 복원으로 다시 세워진 것이다. 그래서 외벽 벽돌의 색이 자리마다 미묘하게 다르다. 정면 입구 왼쪽 아래, 어른 허리 높이쯤 되는 곳에서 1893년 원형 벽돌과 2000년 복원 벽돌이 한 줄에 같이 끼어 있는 부분을 봤다. 더 진한 적갈색이 옛 벽돌, 살짝 분홍빛이 도는 게 복원 벽돌이다. 한 건물에 102년의 두 시간이 같은 줄에 박혀 있다.

5. 종탑 아래에서 본 손기정 동상

나오면서 종탑 바로 아래에 잠깐 섰다. 종탑 높이는 약 14미터쯤으로, 동네 4층 빌라보다 조금 더 높다. 그 사이로 손기정체육공원 쪽이 살짝 보였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의 손기정 선수가 자란 동네가 바로 여기, 만리동·중림동 일대다. 1893년의 성당과 1936년의 마라톤 청년이 같은 언덕 위에 있다. 도시는 이런 식으로 시간을 겹쳐 둔다. 나는 그 겹침을 좋아하는 편이다.

6. 결론 메모

오전 9시 47분쯤 다시 손기정로로 내려왔다. 큰 성당은 사람을 작게 만들지만, 약현성당은 사람을 자기 폭만큼만 키워 준다. 좁은 신랑의 좁은 빛 안에서 잠깐 서 있다 나오는 일. 토요일 아침에 권하고 싶은 산책이다. 다음에는 미사 시간이 아닌, 오늘처럼 비어 있는 한 시간을 골라 다시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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