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셋째 화요일 점심, AI 셋에게 '2031년 옥수13구역 매봉산 자락'을 묘사하라 했다 — 직접 걸은 31분과 어긋난 다섯 지점
화요일 점심, 옥수13구역 매봉산 자락 골목이 5년 뒤 어떻게 변해 있을지 AI 셋에게 한 번씩 물었다. 그리고 정오에 한강진역에서 옥수역까지 한 정거장 더 가, 31분을 직접 걸어 보니 답안 셋이 똑같이 잡지 못한 다섯 장면이 있었다. 도구로서의 AI와 산책자로서의 나 사이에 남은 빈칸을 적는다.
정확히 이렇게 물었다
화요일 오전 11시 12분, 같은 문장을 세 모델에 그대로 붙여 넣었다. "2031년 5월 화요일 점심, 서울 옥수13구역 매봉산 동측 자락 골목을 한국어 350자로 묘사해 달라. 건물의 종류, 노인의 동선, 바닥과 담장의 질감, 빛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넣어 달라." 답이 모두 도착한 시각은 11시 19분이었다. 출력해 둔 300여 자 셋을 휴대전화 메모장에 옮긴 뒤, 12시 4분 옥수역 2번 출구로 나갔다.
답안 셋이 공통으로 그린 2031년
세 답안 모두 '재개발이 끝나 고층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능선', '낡은 단독주택은 사라졌다', '노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를 썼다. 두 답안은 '엘리베이터형 보행 통로'를 적었고, 한 답안은 '리모델링된 매봉산 산책데크가 단지 안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세 답안 모두 '한강 조망 프리미엄이 가격에 반영됐다'고 마무리했다. 단어 단위로 비교해 보니 셋이 공유한 명사·형용사는 열다섯 개였다. 이 셋의 평균 그림은 한 줄로 요약된다. 옥수13구역의 2031년은 '낮은 동네가 통째로 사라진 고층 단지'다.
내가 화요일 12시 8분에 본 것
나는 12시 8분부터 12시 39분까지, 31분 동안 옥수역 2번 출구에서 매봉산 동측 자락 골목을 따라 한남뉴타운 방향까지 걸었다. 출구를 나서자마자 만난 첫 골목의 폭은 약 2.4m, 경사는 어림잡아 14도쯤이었고, 검색 시점 기준으로 옥수13구역은 정비구역 지정 이후 사업 시행 절차가 진행 중이라 들었지만, 골목에는 여전히 1980년대 시멘트 담장과 2000년대 초의 빨간 벽돌 다세대가 같은 줄에 서 있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은 모두 합쳐 열아홉 명, 그중 노인은 일곱이었다. 점심 시간에도 매봉산 산책로로 올라가는 빈 유모차를 끄는 어르신이 둘 있었다.
어긋난 다섯 지점
첫째, 동네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2031년을 묻기는 했지만, 5년이라는 시간을 AI는 '완성 시점'으로 단정해 그렸고, 나는 그 단정이 가장 위험한 부분이라고 봤다. 정비사업은 보통 행정 절차와 이주, 철거, 착공, 입주까지 8년 이상이 걸린다는 사실은 셋 중 한 답안도 짚지 않았다. 둘째, 노인은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골목에서 만난 일곱 분 중 두 분은 자녀가 같은 동네에서 산다고 했고, 한 분은 이주 이후에도 옥수동 주민으로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셋째, 담장의 질감이 한 줄로 정리되지 않았다. 35년 된 시멘트 담장, 20년 된 붉은 벽돌, 10년 된 회색 페인트 담장이 한 골목에 섞여 있었다. 넷째, 매봉산 데크는 단지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공산이 크다. 검색 시점 기준 매봉산공원은 공공 산책로로 별도 운영 중이고, 사업 계획서에서 그 데크가 단지 내부와 연결된다는 공식 표현은 보지 못했다. 다섯째, 한강 조망은 단지 한 동만의 일이다. 매봉산 자락은 능선 방향이 한강에 등을 살짝 비끼고 있어서, 단지 배치에 따라 조망권을 가진 동은 일부에 한정될 것이라고 한 어르신이 알려 주었다. AI는 능선 그 자체를 '한강 뷰'로 묶어 그렸지만, 한 골목을 31분 걸어 보면 그 묶음이 너무 거칠다는 걸 알 수 있다.
AI가 못 잡는 디테일
골목 끝 12시 24분, 한 슈퍼 앞 평상에 마늘 까는 그릇이 다섯 개 놓여 있었다. 옆에는 손글씨로 '오늘은 마늘 천 원' 종이가 붙어 있었고, 그 옆에는 1987이라고 찍힌 우편함이 하나 더 있었다. 12시 31분 골목 모퉁이에서는 한 50대 남자가 작은 트럭에서 시멘트 한 포대를 내려 한 빈 집의 마당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 빈 집 대문에는 정비구역 안내문이 풀로 붙어 있었지만, 같은 골목 끝에서 어린이가 그린 분필 낙서가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이 셋 다 AI 답안에 한 줄도 나오지 않은 장면이다. 우연이라기보다, 평균을 그리는 도구가 잡지 못하는 종류의 디테일이라고 적어 둔다.
결론 메모
AI는 '5년 뒤 옥수13구역'을 그렸고, 나는 2026년 5월 19일 12시 8분의 옥수13구역 한 회차를 걸었다. 이 둘은 같지 않다. 도구로서의 AI가 가짜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재개발 같은 긴 호흡의 도시 이야기를 쓸 때 AI에게 시점만 던지면, 5년이 마치 끝난 5년처럼 압축돼 나온다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사라지는 것은 그렇게 단순히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직접 31분을 걸어야만 알 수 있는 다섯 지점이 있고, 그건 이 블로그가 존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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