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당7구역 행당로14길 — 5월 셋째 수요일 오후 2시 14분, 산자락 다세대 아홉과 1981 굴뚝
5월 셋째 수요일 오후 2시 14분, 나는 왕십리역에서 행당산 서쪽 자락의 행당7구역에 들어섰다. 폭 3.2미터의 행당로14길 한 줄에 1980년대 초의 다세대 아홉이 줄지어 있었고, 산자락으로 비스듬히 박힌 1981 콘크리트 굴뚝 한 기를 23분 동안 관찰했다. 정비예정이라는 안내판이 매달린 골목 안에서, 평일 오후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기록한다.
왕십리역에서 행당7구역까지의 12분
나는 왕십리역 5번 출구에서 행당산 방향으로 12분쯤 걸었다. 행당로 본길에서 북쪽으로 두 번째 꺾이는 골목이 행당로14길이다. 폭은 3.2m 남짓. 좁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작은 트럭 한 대가 들어오면 사람이 비켜서야 한다. 골목 입구 전봇대에는 흰 글자로 '행당7재정비촉진구역 정비예정'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매달려 있었다. 글자 크기는 가로 7cm, 세로 5cm쯤. 그 아래에 지정 단계가 작게 적혀 있었지만, 일정과 단계는 검색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옮겨 적지 않았다.
5월의 오후 2시 14분. 햇볕은 골목 동쪽 벽 2층 창문 아래까지 비스듬히 닿았다. 기온은 섭씨 22도쯤. 평일 오후의 골목은 출근시간대보다 한결 비어 있었고, 23분 동안 골목을 지나간 사람은 일곱이었다.
다세대 아홉의 외장과 같은 자리의 균열
입구에서 33걸음 들어가면 같은 형식의 4층 다세대 아홉이 골목 양쪽으로 줄지어 시작된다. 외장은 적색 적벽돌 위에 흰 도장이 덧칠된 형식이고, 한 동의 폭은 약 6.8m. 출입구는 모두 동향. 계단실 창문이 한 동에 셋씩 있고, 그 창에는 노란 알루미늄 새시가 박혀 있었다.
균열은 일정한 자리에 있었다. 모든 동의 3층 창문 옆, 그러니까 2층과 3층 사이 슬래브 자리에 세로 균열이 한 줄씩 나 있었다. 길이는 1m 안팎, 폭은 손가락 두께만큼. 같은 자리에 같은 균열이 아홉 번 반복된다는 사실은, 이 아홉 동이 같은 도면과 같은 시공팀, 같은 시기에 올라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1981이라는 숫자가 남은 콘크리트 굴뚝
골목 안쪽에서 다섯 번째 동과 여섯 번째 동 사이. 거기에 높이 약 11m의 콘크리트 굴뚝 한 기가 산자락을 향해 비스듬히 박혀 있었다. 굴뚝 옆면에는 흐릿한 회색 페인트로 '1981'이라는 네 자리 숫자가 남아 있었다. 굴뚝 끝에는 비둘기 두 마리가 앉아 있었고, 그 아래로 5월의 햇볕이 굴뚝의 그림자를 약 9m 길이로 동쪽 벽에 던졌다.
원래 이 굴뚝은 다세대 한 동의 보일러실 배기탑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다. 골목 안쪽 슈퍼 주인의 말로는, 도시가스가 들어오면서 기능을 잃었지만 철거 비용이 들어 그대로 두었다고 했다. 굴뚝은 산자락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인공물 같았다.
슈퍼와 세탁소, 그리고 오후의 두 사람
골목 중간에 1980년대식 1층 슈퍼가 있었다. 간판은 '행당슈퍼' 네 글자. 미닫이 알루미늄 문 안쪽에는 옛 캔디 진열대 두 개와 냉장고 한 대가 있었다. 가격표 종이는 모두 손글씨. '아이스크림 800', '컵라면 1,200'. 손님은 23분 동안 한 분, 60대 후반쯤의 어르신이 들어가서 신문 한 부와 두유 한 팩을 사 들고 나왔다.
슈퍼 맞은편에는 세탁소가 있었다. 미싱 한 대가 약 7박자 간격으로 돌고 있었고, 천장에는 다림질된 와이셔츠가 옷걸이에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흰색 8벌, 옅은 하늘색 3벌, 베이지 1벌. 세탁소 주인은 50대 중반쯤. 가게 안쪽 라디오에서는 오후 두 시 뉴스가 끝나가는 중이었다.
'정비예정'이라는 말 뒤에 남는 것
'정비예정'이라는 단어는 시간을 두 갈래로 나눈다. 한쪽은 사라질 사람들과 인공물의 시간, 다른 한쪽은 들어올 새 콘크리트의 시간. 행당7구역의 굴뚝 1981, 슈퍼 안쪽 두유 한 팩, 다림질된 셔츠 12벌은 모두 첫 번째 시간을 채우고 있는 것들이다.
20대인 내가 이 골목에서 가장 오래 멈춘 자리는 굴뚝 아래였다. 굴뚝 그림자가 동쪽 벽을 가로지르는 동안, 그 안쪽에 사는 사람의 평일 오후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정비예정이라는 안내판이 매달린 골목에서 평일 오후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좀 이상하게 좋았다.
다음 산책의 메모
다음 주 같은 시각에 다시 와서 굴뚝 그림자의 자리를 다시 재 볼 생각이다. 정비예정이라는 말이 실제로 어디까지 와 있는지, 산자락이 받아내는 햇볕의 각도가 어떻게 옮겨가는지. 같은 골목, 같은 시각, 다른 한 페이지를 또 적어 두려 한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