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넷째 일요일 오후 2시 14분, 청운동 윤동주문학관 — 폐수도가압장 두 우물과 38cm 콘크리트 벽
어제 일요일 오후, 인왕산 자락 청운동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에 다녀왔다. 1974년에 지어진 청운수도가압장 건물이 2012년 시인의 이름을 단 문학관으로 다시 열렸고, 나는 거기서 옛 물탱크 두 개의 안으로 차례로 들어가 보았다. 보존한다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보존하는가에 대한 한 가지 답이, 안쪽 두께 38센티미터쯤 되는 콘크리트 벽에 적혀 있었다.
청운동 끝, 창의문 옆에 앉은 흰 매스
자하문터널을 지나 창의문 사거리 직전에 차선을 좁히면 오른쪽으로 흰 건물 하나가 보인다. 종로구 창의문로 119, 윤동주문학관이다. 어제 일요일 오후 2시 14분쯤 도착했을 때, 햇빛은 노출콘크리트 외벽을 한 번 미끄러져 인왕산 능선 쪽으로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매스 자체는 크지 않다. 한 변 6미터 남짓의 정육면체 두 개를 뒤로 살짝 밀어 붙여 놓은 모양이다. 인왕산 자락의 능선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한껏 몸을 낮춘 인상을 받았다. 외벽은 흰 노출콘크리트지만 표면이 거칠고, 봄볕 아래에서 회색에 가까운 톤이 살짝 돌았다. 건너편 창의문은 1396년에 처음 세워진 사소문 중 하나로 1958년 복원된 형태다. 그 사이 600년 차이의 두 매스가 9미터 도로 하나를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모양새가 묘했다.
제1전시실 — 시인채, 가로 5미터의 흰 방
입구는 의외로 작다. 폭 90센티미터쯤의 문을 지나면 흰 벽으로만 둘러싸인 좁은 전시실이 나온다. 가로 약 5미터, 세로 약 4미터. 바닥은 검은 화강석, 천장은 노출콘크리트 그대로다. 벽에는 시인의 친필 원고 사진본이 아홉 점쯤 걸려 있다. '별 헤는 밤'과 '쉽게 씌어진 시'의 글씨가 익숙한 모양으로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방에서는 시간이 한 번 멈추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아마 문 하나를 두고 가압장에서 시인의 방으로 옮겨오는 동선이 의도된 결과일 것이다.
열린 우물 — 천장을 뜯어낸 사각 콘크리트 함
복도를 한 번 꺾어 들어가면 가장 인상적인 공간이 나온다. '열린 우물'이라 이름 붙은 제2전시실이다. 옛 가압장의 물탱크 두 개 중 하나의 천장 슬래브를 통째로 뜯어내어 하늘을 사각으로 끌어들였다. 한 변 약 5미터, 깊이 약 6미터의 콘크리트 함 안에 들어서면 머리 위로 하늘이 정확히 사각형으로 잘려 보인다. 벽면을 자세히 보면 1974년부터 2007년 폐쇄될 때까지 38년 가까이 물이 닿아 있던 자국이 가로띠로 남아 있다. 콘크리트 벽 두께를 손으로 짚어보면 38센티미터쯤 된다. 가압장이었던 시절의 기억이 표면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사실이, 시각이 아니라 손끝으로 먼저 들어왔다.
닫힌 우물 — 불 꺼진 영상실, 24분의 어둠
'열린 우물' 옆에는 '닫힌 우물'이라 이름 붙인 제3전시실이 있다. 두 번째 물탱크인데, 이쪽은 천장 슬래브를 그대로 두었다. 입구의 작은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의 완전한 어둠이다. 안쪽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짧은 다큐 영상이 약 24분간 반복 재생된다. 영상이 한 번 끝나는 동안, 닫힌 천장 한 구석에 뚫린 작은 사각 구멍으로 햇빛이 자처럼 길게 들어왔다. 그 빛이 영상의 흰 화면과 부딪치는 짧은 순간이 있다. 시인의 짧고 어두운 시간을 직설적으로 비유한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38센티미터가 남긴 것
문학관을 나오면서 나는 한 가지 생각을 정리했다. 가압장의 외피와 두께 38센티미터의 콘크리트 벽, 두 개의 물탱크라는 원래의 구조는 거의 손대지 않은 채로 새 기능만 얹은 셈이다. 보존이라는 말이 종종 외형의 박제로 쓰일 때가 있는데, 여기서는 기능이 끝난 인프라가 문학이라는 다른 기능을 다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도시는 결국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남기느냐의 문제고, 청운동의 이 작은 매스는 그 둘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2014년 김수근건축상을 받은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설계자가 새로 만든 면보다 이미 있던 면을 더 정확히 골라낸 작업으로 보였다.
다음 일요일에는 같은 길을 따라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청운수성동계곡 쪽까지 한 번 더 걸어볼 생각이다. 같은 자리에 두 번 가는 것은 한 번 본 것을 다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제 일요일 오후, 인왕산 자락 청운동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에 다녀왔다. 1974년에 지어진 청운수도가압장 건물이 2012년 시인의 이름을 단 문학관으로 다시 열렸고, 나는 거기서 옛 물탱크 두 개의 안으로 차례로 들어가 보았다. 보존한다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보존하는가에 대한 한 가지 답이, 안쪽 두께 38센티미터쯤 되는 콘크리트 벽에 적혀 있었다.
청운동 끝, 창의문 옆에 앉은 흰 매스
자하문터널을 지나 창의문 사거리 직전에 차선을 좁히면 오른쪽으로 흰 건물 하나가 보인다. 종로구 창의문로 119, 윤동주문학관이다. 어제 일요일 오후 2시 14분쯤 도착했을 때, 햇빛은 노출콘크리트 외벽을 한 번 미끄러져 인왕산 능선 쪽으로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매스 자체는 크지 않다. 한 변 6미터 남짓의 정육면체 두 개를 뒤로 살짝 밀어 붙여 놓은 모양이다. 인왕산 자락의 능선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한껏 몸을 낮춘 인상을 받았다. 외벽은 흰 노출콘크리트지만 표면이 거칠고, 봄볕 아래에서 회색에 가까운 톤이 살짝 돌았다. 건너편 창의문은 1396년에 처음 세워진 사소문 중 하나로 1958년 복원된 형태다. 그 사이 600년 차이의 두 매스가 9미터 도로 하나를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모양새가 묘했다.
제1전시실 — 시인채, 가로 5미터의 흰 방
입구는 의외로 작다. 폭 90센티미터쯤의 문을 지나면 흰 벽으로만 둘러싸인 좁은 전시실이 나온다. 가로 약 5미터, 세로 약 4미터. 바닥은 검은 화강석, 천장은 노출콘크리트 그대로다. 벽에는 시인의 친필 원고 사진본이 아홉 점쯤 걸려 있다. '별 헤는 밤'과 '쉽게 씌어진 시'의 글씨가 익숙한 모양으로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방에서는 시간이 한 번 멈추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아마 문 하나를 두고 가압장에서 시인의 방으로 옮겨오는 동선이 의도된 결과일 것이다.
열린 우물 — 천장을 뜯어낸 사각 콘크리트 함
복도를 한 번 꺾어 들어가면 가장 인상적인 공간이 나온다. '열린 우물'이라 이름 붙은 제2전시실이다. 옛 가압장의 물탱크 두 개 중 하나의 천장 슬래브를 통째로 뜯어내어 하늘을 사각으로 끌어들였다. 한 변 약 5미터, 깊이 약 6미터의 콘크리트 함 안에 들어서면 머리 위로 하늘이 정확히 사각형으로 잘려 보인다. 벽면을 자세히 보면 1974년부터 2007년 폐쇄될 때까지 38년 가까이 물이 닿아 있던 자국이 가로띠로 남아 있다. 콘크리트 벽 두께를 손으로 짚어보면 38센티미터쯤 된다. 가압장이었던 시절의 기억이 표면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사실이, 시각이 아니라 손끝으로 먼저 들어왔다.
닫힌 우물 — 불 꺼진 영상실, 24분의 어둠
'열린 우물' 옆에는 '닫힌 우물'이라 이름 붙인 제3전시실이 있다. 두 번째 물탱크인데, 이쪽은 천장 슬래브를 그대로 두었다. 입구의 작은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의 완전한 어둠이다. 안쪽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짧은 다큐 영상이 약 24분간 반복 재생된다. 영상이 한 번 끝나는 동안, 닫힌 천장 한 구석에 뚫린 작은 사각 구멍으로 햇빛이 자처럼 길게 들어왔다. 그 빛이 영상의 흰 화면과 부딪치는 짧은 순간이 있다. 시인의 짧고 어두운 시간을 직설적으로 비유한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38센티미터가 남긴 것
문학관을 나오면서 나는 한 가지 생각을 정리했다. 가압장의 외피와 두께 38센티미터의 콘크리트 벽, 두 개의 물탱크라는 원래의 구조는 거의 손대지 않은 채로 새 기능만 얹은 셈이다. 보존이라는 말이 종종 외형의 박제로 쓰일 때가 있는데, 여기서는 기능이 끝난 인프라가 문학이라는 다른 기능을 다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도시는 결국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남기느냐의 문제고, 청운동의 이 작은 매스는 그 둘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2014년 김수근건축상을 받은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설계자가 새로 만든 면보다 이미 있던 면을 더 정확히 골라낸 작업으로 보였다.
다음 일요일에는 같은 길을 따라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청운수성동계곡 쪽까지 한 번 더 걸어볼 생각이다. 같은 자리에 두 번 가는 것은 한 번 본 것을 다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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