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ECC, 수요일 오후 2시 12분 — 도미니크 페로의 캠퍼스 협곡, 빛의 단면 일곱
2026년 5월 13일 수요일 오후 2시 12분부터 2시 47분까지, 이화여대 정문에서 ECC 협곡 안까지 35분을 걸었다. 도미니크 페로가 잔디 언덕을 길게 갈라 만든 협곡을 따라 내려가며, 양쪽 유리벽이 받아내는 5월의 빛을 일곱 번 다시 보았다. 사라지지 않을 건물이지만, 사라지는 것은 빛이라는 것을 기록한다.
정문에서 ECC까지 약 230m, 잔디 언덕의 첫인상
나는 2026년 5월 13일 수요일 오후 2시 12분에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시작했다. 정문에서 본관 앞 잔디 언덕까지는 발걸음으로 약 230m. 평지처럼 보이는 길이 안쪽으로 가면서 완만하게 올라간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서부터 갑자기 땅이 갈라진다. 도미니크 페로가 2008년에 만든 이 협곡은 처음 와 본 사람을 한 번에 멈춰 세운다. 잔디 위로 두 줄의 유리벽만 떠올라 있고, 그 사이로 5월의 햇빛이 길게 미끄러져 갔다. 잔디는 짧게 깎여 있었고, 한 면이 약 70m, 그 옆 면이 약 80m 정도. 두 면 사이의 협곡이 약 250m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협곡의 폭과 깊이 — 약 25m와 약 6m
협곡의 폭은 어림잡아 약 25m, 깊이는 약 6m 정도 된다. 입구 쪽 양옆으로 폭이 좁아지는 계단이 함께 내려가는데, 한 칸이 약 17cm 높이쯤이고 약 35단 정도가 협곡 바닥까지 닿는다. 나는 계단 중간쯤에서 한 번 멈췄다. 위에서 본 협곡과 아래서 본 협곡은 두 개의 다른 건물 같았다. 위에서는 두 면의 유리벽 사이에 가는 틈이 있었고, 아래에서는 그 틈이 좁은 하늘로 보였다. 협곡 바닥 폭은 약 15m, 바닥의 검은 화강석 보행로는 길게 두 줄로 깔려 있었다.
유리벽 단면 — 슬릿 사이로 들어오는 오후 2시의 빛
유리벽 단면은 단순한 평면이 아니다. 세로로 약 35cm 폭의 슬릿이 일정 간격으로 들어가 있고, 그 슬릿 안쪽에 알루미늄 가는 핀이 박혀 있다. 한 핀이 약 5cm 너비. 오후 2시 12분의 빛은 남서쪽에서 비스듬히 들어와 동쪽 벽 안쪽에 길고 가는 줄무늬를 만들었다. 나는 줄무늬를 일곱 번 다시 보았다. 한 줄무늬가 약 80cm 정도, 줄과 줄 사이 간격이 약 40cm. 2시 24분쯤 다시 보았을 때 줄무늬는 안쪽 면으로 약 18cm 더 옮겨가 있었다. 빛은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협곡 안의 카페와 학생들 — 셔츠 한 장과 가디건 한 장
협곡 중간쯤에 카페가 있다. 협곡 안쪽 벽을 따라 자리가 길게 펼쳐져 있고, 천장 높이는 위로 약 4.5m. 학생들은 대체로 셔츠 한 장 위에 얇은 가디건이나 카디건을 걸친 차림이었다. 다섯 자리를 천천히 보았다. 한 학생은 가디건을 무릎에 올려놓고 노트북을 펼쳐 두었다. 다른 학생은 짧은 패딩 베스트를 의자 뒤에 걸쳤다. 또 다른 학생은 후드 짚업 위에 카디건을 더 걸치고 있었다. 5월 둘째 주 오후, 햇빛은 강하지만 그늘은 17도쯤이라 가디건이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나도 셔츠 한 장 위에 얇은 코튼 가디건 한 장을 걸친 차림이었다.
지하 5층 도서관 입구 — 천장 높이가 한 단씩 낮아진다
협곡 바닥에서 ECC 도서관 입구까지는 한 번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 도서관 로비 천장은 협곡 천장보다 한 단 낮아 약 3.2m. 거기서부터 지하 5층까지 한 번에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나는 학생증이 없어 도서관 안까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입구의 유리문 앞에서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도미니크 페로의 협곡은 위에서부터 단계별로 천장이 낮아진다. 잔디 위 하늘이 무한대, 협곡 위 약 6m, 카페 안 약 4.5m, 도서관 로비 약 3.2m, 안쪽 열람실은 더 낮을 것이다. 빛은 단계별로 줄어들고, 그만큼 사람의 자세는 책상 쪽으로 모아진다. 건축이 자세를 만든다는 말은 이런 자리에서 비로소 손에 잡힌다.
다시 지상으로 — 잔디 언덕 위 벤치에서 본 그림자
나는 오후 2시 41분에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잔디 언덕 위에는 벤치가 세 개 있다. 그 중 가운데 벤치에 앉아 협곡을 내려다보았다. 그림자는 처음 들어갈 때보다 한 뼘 더 길어져 있었다. 협곡의 동쪽 벽 그림자가 잔디 위로 약 4m쯤 뻗어 있었다. 35분 전과 같은 풍경이지만, 빛은 같은 풍경을 절대 같게 두지 않는다. 도미니크 페로의 협곡은 2008년부터 거기 있었고, 앞으로도 한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오후 2시 12분의 그 빛, 줄무늬 일곱, 학생 가디건 다섯 자리의 색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것을 기록하러 왔다.
결론 메모
건축은 가만히 서 있지만, 그 위로 지나가는 빛은 매일 다르다. 도미니크 페로의 ECC는 잔디 언덕을 갈라 빛을 받아들이는 그릇이 되었다. 사라지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이 협곡 안 오후 2시의 줄무늬 일곱이다. 나는 그것을 기록한다.
— 한지후. 2026년 5월 13일 수요일 오후 2시 12분~2시 47분. 이화여대 ECC. 셔츠 한 장 위에 코튼 가디건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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