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IFC몰 1번 출구 — 금요일 오전 11시, 30대 봄 끝자락 재킷 여섯 컷
5월 22일 금요일 오전 11시, 나는 여의도 IFC몰 1번 출구 앞 화단 옆에 서서 약 40분간 30대 직장인 남성의 봄 끝자락 재킷을 관찰했다. 점심 직전 사옥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구간이라 어깨선과 색감이 동시에 비교되는 시간대다. 오늘은 그중 여섯 컷만 골라, 색·소재·실루엣을 짧게 기록해 둔다.
11시 02분 — 베이지 코튼리넨 언컨스트럭티드 재킷
맨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어깨심이 거의 없는 언컨스트럭티드 재킷을 입었고 색은 모래에 가까운 베이지, 표면에는 슬러브 리넨 특유의 결이 살짝 보였다. 코튼 리넨 혼방으로 70/30 정도 되어 보였다. 안에는 화이트 옥스퍼드 셔츠, 단추는 두 번째까지 풀어둔 상태였다. 슬랙스는 베이지보다 약간 짙은 카키 톤, 발목이 1.5cm쯤 드러나는 노 크롭. 신발은 다크 브라운 스웨이드 더비, 끈은 살짝 풀려 있었다. 봄 끝자락에서 여름 초입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가장 무난한 색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옷은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약 2주 정도가 가장 잘 어울리는 시기인데, 오늘 마주친 것은 거의 마지막 타이밍에 가까웠다.
11시 11분 — 차콜 슬림 셋업, 230g 울 트로피컬의 광택
두 번째는 차콜 그레이 슬림 셋업이었다. 무게로 보아 230g 안팎의 울 트로피컬, 광택이 살짝 도는 표면이 맑은 날 빛을 정직하게 반사했다. 어깨는 너무 좁지도 넓지도 않은 내추럴 숄더, 라펠 폭은 8cm쯤. 셔츠는 라이트 블루 단색, 타이는 없었다. 구두는 블랙 플레인토 옥스퍼드, 광이 정직하게 정돈된 상태였다. 30대 후반으로 보였고 걸음이 빨라서 재킷 뒷자락이 어깨 움직임에 같이 흔들렸다. 정장 셋업이 오늘처럼 23도 가까이 오를 듯한 날 어디까지 견디는지가 매번 궁금하다. 230g 울 트로피컬은 한국 여름의 시작 무렵까지 버틸 수 있는 거의 마지노선이라고 나는 늘 생각한다.
11시 23분 — 올리브 캐주얼 블레이저, 끝물 트윌의 부피감
세 번째 사람은 올리브색 코튼 트윌 블레이저였다. 카키와 올리브 사이 어딘가, 약간 노란 기가 도는 톤이라 빛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였다. 트윌 특성상 표면에 사선결이 도드라져 부피감이 있었고, 더운 날 입기에는 사실 무거운 옷이다. 안에는 그레이 멜란지 헨리넥, 슬랙스는 네이비 코튼 슬랙스였다. 신발은 다크 브라운 스웨이드 로퍼였다. 30대 초반쯤. 이 옷은 다음 주를 넘기면 옷장에 들어갈 옷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래서 오늘 이 사람을 마주친 것이 다행이라는 기록을 남긴다. 봄에 한 번이라도 더 입어보고 옷장에 들어가는 옷은 다음 봄까지의 거리가 그래도 짧게 느껴진다.
11시 31분 — 시어서커 페일 그린, 한낮 23도의 환기
네 번째 컷이 오늘 가장 인상적이었다. 페일 그린 시어서커 재킷. 코튼 100, 표면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한쪽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30대 중반 남자였고 안에는 흰 반팔 티, 아래는 라이트 베이지 치노였다. 신발은 화이트 캔버스 스니커즈, 발목에는 양말이 보이지 않았다. 시어서커는 입기 어렵다는 통념이 있지만 페일 그린은 의외로 한국 남자 피부톤에 무난하게 떨어진다. 한낮 기온이 23도쯤 올라온 날, 그가 IFC몰 안으로 들어가며 만든 작은 공기 흐름은 거의 환기에 가까웠다.
11시 40분 — 카멜 린넨 헤링본, 5월 끝의 따뜻한 색
마지막 컷은 카멜 린넨 헤링본 재킷이었다. 카멜이라기보다 라이트 토프에 가까운 색, 자세히 보니 헤링본 패턴이 1cm 폭으로 일정하게 들어가 있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였고 안에는 아이보리 폴로, 슬랙스는 짙은 브라운이었다. 5월 끝물의 햇빛은 노란 기가 강해서 카멜과 토프 계열의 옷이 가장 잘 받는 시기다. 그가 횡단보도에서 한 번 멈춰 섰을 때, 등 뒤로 들어오던 빛이 헤링본 결을 한 번 더 살려냈다. 나는 카메라 대신 손바닥 위에 색을 옮겨 적는 기분으로 잠시 서 있었다.
관찰 도구와 자세
오늘 사용한 도구는 오래 쓰던 손바닥 사이즈 노트와 0.5mm 검정 볼펜뿐이다. 사진은 한 장도 찍지 않았고, 보이는 색은 그 자리에서 한 단어로 옮겨 적었다. 자세는 화단 옆 난간에 등을 기대고 가방을 가슴 앞에 두는 식. 사람과 너무 가까워지면 시야가 좁아지고, 너무 멀어지면 직물의 결이 보이지 않는다. 1.5m 안팎의 거리가 나에게는 가장 정확했다.
결론 메모
여섯 컷을 종합하면 오늘 여의도 IFC 앞의 30대 직장인 재킷은 베이지·차콜·올리브·페일 그린·카멜로 이어졌다. 다섯 가지 색이 거의 같은 채도 안에서 움직였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5월 마지막 주를 지나면서 직장인 봄 재킷은 점점 옷장으로 들어가고, 시어서커와 린넨 비율이 빠르게 올라갈 것이다. 다음 주에 다시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한 번 더 기록해 두고 싶다. 옷이 사라지는 시기는 옷이 새로 등장하는 시기보다 기록할 시간이 짧아서, 5월 끝과 6월 초 사이의 두 주 동안은 발걸음을 더 천천히 두는 편이 좋다고 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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